“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아시다시피 이 복음은
이 복음을 통해 프란치스코가 자기 사명을 깨달은,
그래서 우리 프란치스칸에게는 아주 중요한 복음입니다.
그리고 “복음화하는 공동체”라는 주제로 연 피정을 시작하는 날,
우리는 섭리처럼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복음을 듣습니다.
그래서 피정 중 상당 시간 이 복음을 묵상하게 되겠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 한 부분을 묵상하겠습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이 말씀이 뜻하는 것이 무엇아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것은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나 고양이한테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한테 선포하라는 것인데,
어찌 사람과 인사하는 것을 하지 말라 하시는 것입니까?
이 말씀은 누구와 만나러 가는지
그 심각성을 익히 인식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복음의 앞 부분을 보면 이리떼 같은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이리떼 같지는 않더라도 복음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암수술을 앞 둔 사람에게 가면서,
우리가 아이티 지진 현장에 가면서 노닥거리며 갈 수 없고
이 사람 저 사람하고 인사치례 다 하면서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럴 시간도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겠지요.
돈, 여행보따리, 신발도 지니지 말라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 말씀은 또한 하느님 외에는
사람을 만나 자문을 구하려 하지도 말 것이며,
사람을 만나 위로와 격려도 구하지 말 것이며,
사람을 만나 지원도 받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요?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주님 친히 알려 주셨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는 사실 많은 사람들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글라라와 실베스뗄의 자문을 받았고,
귀도 주교나 성직자들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의 자문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의 자문을 받으려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를 통해서 말씀하셨건
프란치스코는 주님께서 친히 알려주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사람의 위로를 받으려 한 적이 있습니다.
영적인 위로가 필요하여 형제에게 연주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형제가 무슨 이유에선지 연주를 정중히 거절하자
즉시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위로를 받으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천상 바이올린 소리를 듣게 됩니다.
우리도 이 피정을 통해
하느님께서 친이 나에게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들읍시다.
저, 김 레오나르도가 강의하고 강론하지만
하느님게서 저를 통해서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들읍시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을 선포할 때
어떤 때는 너무도 긴박하고
어떤 때는 너무도 막막하고
어떤 때는 너무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노닥거리느라 지체할 시간이 없고
사람의 자문과 위로를 받으려고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때 우리는 오직
하느님과 함께 가고
하느님을 따라 가면 됩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아시다시피 이 복음은
이 복음을 통해 프란치스코가 자기 사명을 깨달은,
그래서 우리 프란치스칸에게는 아주 중요한 복음입니다.
그리고 “복음화하는 공동체”라는 주제로 연 피정을 시작하는 날,
우리는 섭리처럼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복음을 듣습니다.
그래서 피정 중 상당 시간 이 복음을 묵상하게 되겠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 한 부분을 묵상하겠습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이 말씀이 뜻하는 것이 무엇아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것은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나 고양이한테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한테 선포하라는 것인데,
어찌 사람과 인사하는 것을 하지 말라 하시는 것입니까?
이 말씀은 누구와 만나러 가는지
그 심각성을 익히 인식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복음의 앞 부분을 보면 이리떼 같은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이리떼 같지는 않더라도 복음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암수술을 앞 둔 사람에게 가면서,
우리가 아이티 지진 현장에 가면서 노닥거리며 갈 수 없고
이 사람 저 사람하고 인사치례 다 하면서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럴 시간도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겠지요.
돈, 여행보따리, 신발도 지니지 말라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 말씀은 또한 하느님 외에는
사람을 만나 자문을 구하려 하지도 말 것이며,
사람을 만나 위로와 격려도 구하지 말 것이며,
사람을 만나 지원도 받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요?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주님 친히 알려 주셨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는 사실 많은 사람들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글라라와 실베스뗄의 자문을 받았고,
귀도 주교나 성직자들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의 자문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의 자문을 받으려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를 통해서 말씀하셨건
프란치스코는 주님께서 친히 알려주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사람의 위로를 받으려 한 적이 있습니다.
영적인 위로가 필요하여 형제에게 연주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형제가 무슨 이유에선지 연주를 정중히 거절하자
즉시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위로를 받으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천상 바이올린 소리를 듣게 됩니다.
우리도 이 피정을 통해
하느님께서 친이 나에게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들읍시다.
저, 김 레오나르도가 강의하고 강론하지만
하느님게서 저를 통해서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들읍시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을 선포할 때
어떤 때는 너무도 긴박하고
어떤 때는 너무도 막막하고
어떤 때는 너무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노닥거리느라 지체할 시간이 없고
사람의 자문과 위로를 받으려고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때 우리는 오직
하느님과 함께 가고
하느님을 따라 가면 됩니다.
저마다 자기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완곡함이
마치 이리떼를 만나는 것만큼 위협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고
사방을 둘려 봐도 진리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워 고독할 때가 있지만,
“사랑은 두려움을 모르고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다”는 성서구절이 있듯이
제 마음 안에 사랑을 키워가는 것만큼 이리 떼 한 가운데서도 의연할 수 있고
제 안에서 말씀하시는 진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과 함께 가고
하느님을 따라 가면 됩니다.“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묵상나누어 주셔서
하루시작이 유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