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들.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 준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도 많습니다.
12년 동안 하혈 병을 앓은 부인의 경우가 대표적이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환자들도 그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이들이 감히 하느님께 손을 대었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감히 당신께 손을 대었다고 하셨을까요?
아마 이들도 하느님께 손을 댄다고 생각하였다면
아마 손을 대지 못했을 것이고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신을 벗듯이
손을 대기는커녕 오히려 멀찍이 떨어져 무릎 꿇고는
벌벌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예수님은 하느님이시자 인간이십니다.
이는 마치 겨울 청천 하늘에 달이 잎새 없는 나뭇가지에 걸리듯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걸리어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하느님이며 인간이시라는 것은
골치 아픈 신학의 문제가 아니고 도그마의 문제도 아닙니다.
만남의 문제이고 사랑의 문제입니다.
느낌의 문제이고 감동의 문제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내려오시어
우리의 손에 걸리고
우리의 귀에 걸리고
우리의 코에 걸리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걸리는 하느님의 겸손과 사랑에
우리는 프란치스코처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께서
사제의 손안에서 제대 위에 계실 때,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에 싸이고
온 세상은 떨며 하늘은 환호할지어다!
오, 탄복하올 위대함이며 지고의 장엄이여! 오,
극치의 겸손이여 오, 겸손의 극치여!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찮은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숨기기까지 이렇게 겸손하시다니!
형제들이여, 하느님의 겸손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높여 주시도록 여러분도 겸손해지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 전부를 바치시는 분이
여러분 전부를 받으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것 그 아무것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남겨 두지 마십시오.”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 준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도 많습니다.
12년 동안 하혈 병을 앓은 부인의 경우가 대표적이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환자들도 그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이들이 감히 하느님께 손을 대었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감히 당신께 손을 대었다고 하셨을까요?
아마 이들도 하느님께 손을 댄다고 생각하였다면
아마 손을 대지 못했을 것이고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신을 벗듯이
손을 대기는커녕 오히려 멀찍이 떨어져 무릎 꿇고는
벌벌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예수님은 하느님이시자 인간이십니다.
이는 마치 겨울 청천 하늘에 달이 잎새 없는 나뭇가지에 걸리듯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걸리어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하느님이며 인간이시라는 것은
골치 아픈 신학의 문제가 아니고 도그마의 문제도 아닙니다.
만남의 문제이고 사랑의 문제입니다.
느낌의 문제이고 감동의 문제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내려오시어
우리의 손에 걸리고
우리의 귀에 걸리고
우리의 코에 걸리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걸리는 하느님의 겸손과 사랑에
우리는 프란치스코처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께서
사제의 손안에서 제대 위에 계실 때,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에 싸이고
온 세상은 떨며 하늘은 환호할지어다!
오, 탄복하올 위대함이며 지고의 장엄이여! 오,
극치의 겸손이여 오, 겸손의 극치여!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찮은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숨기기까지 이렇게 겸손하시다니!
형제들이여, 하느님의 겸손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높여 주시도록 여러분도 겸손해지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 전부를 바치시는 분이
여러분 전부를 받으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것 그 아무것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남겨 두지 마십시오.”
지금 여기에 계시는
우리 주님 옷자락에 살짝 손을 대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