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열려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열리라고 하심은 닫혀 있기 때문인데,
오늘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은 귀와 입이 막힌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잘 보면
귀는 먹었는데 말은 더듬는 것으로 얘기됩니다.
말을 못하는 분들을 보면 사실 입이 막혀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귀가 막혀서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이 말을 못한다는 얘깁니다.
제가 미국에 살았는데도 영어를 잘 못하는 이유는
나이 먹어서 미국에 가고 얼마 안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학교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노상 방에서 책만 보고 하늘만 쳐다보다가 한국에 돌아온 것입니다.
많이 대화를 나누어야 많이 듣고
많이 들어야 말을 잘 할 수 있는데
저는 초등 단계인 듣기를 잘 그리고 많이 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도 말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말이 들리면 하는 것은 사실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대화도 이런 것입니다.
그저 지껄여대는 말이 아니라
정말 말을 잘 하려면,
다시 말해서 듣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말을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하려면 듣는 것부터 잘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듣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귀가 어두워지는데
물리적인 귀만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귀도 어두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마음의 귀가 어두워진다는 것이 무엇이고,
왜 마음의 귀가 어두워집니까?
마음의 귀가 어두워진다는 것은 들을 마음이 없는 것이고
들을 마음이 없는 것은 듣는 것보다 할 말이 더 많기 때문이지요.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 왜 그렇게 조급해지는지.
그의 말을 충분히 다 듣고 또 이해하기도 전에
벌써 나의 할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안달입니다.
100m 달리기 선수가
출발신호만 울리면 튀어나가려고 기다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과의 대화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먼저 충분히 들어야 하는데,
그저 내 할 얘기뿐입니다.
그러니 침묵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침묵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가 있었다는데
위대한 침묵이건 큰 침묵인건 침묵이 필요합니다.
나의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울려 퍼지도록.
고요 가운데 하느님이 말씀하시도록.
내 마음 안에서
온갖 욕구와 아우성과 주장을 잠재우고
온갖 미움과 분노와 감정들을 잠재워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기도가 이루어지고,
내 입이 열려 영가가 울리고,
오늘 복음의 사람처럼 말하지 말라고 엄히 명해도
잠잠치 못하고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널리 전할 것입니다.
열리라고 하심은 닫혀 있기 때문인데,
오늘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은 귀와 입이 막힌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잘 보면
귀는 먹었는데 말은 더듬는 것으로 얘기됩니다.
말을 못하는 분들을 보면 사실 입이 막혀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귀가 막혀서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이 말을 못한다는 얘깁니다.
제가 미국에 살았는데도 영어를 잘 못하는 이유는
나이 먹어서 미국에 가고 얼마 안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학교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노상 방에서 책만 보고 하늘만 쳐다보다가 한국에 돌아온 것입니다.
많이 대화를 나누어야 많이 듣고
많이 들어야 말을 잘 할 수 있는데
저는 초등 단계인 듣기를 잘 그리고 많이 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도 말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말이 들리면 하는 것은 사실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대화도 이런 것입니다.
그저 지껄여대는 말이 아니라
정말 말을 잘 하려면,
다시 말해서 듣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말을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하려면 듣는 것부터 잘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듣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귀가 어두워지는데
물리적인 귀만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귀도 어두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마음의 귀가 어두워진다는 것이 무엇이고,
왜 마음의 귀가 어두워집니까?
마음의 귀가 어두워진다는 것은 들을 마음이 없는 것이고
들을 마음이 없는 것은 듣는 것보다 할 말이 더 많기 때문이지요.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 왜 그렇게 조급해지는지.
그의 말을 충분히 다 듣고 또 이해하기도 전에
벌써 나의 할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안달입니다.
100m 달리기 선수가
출발신호만 울리면 튀어나가려고 기다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과의 대화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먼저 충분히 들어야 하는데,
그저 내 할 얘기뿐입니다.
그러니 침묵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침묵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가 있었다는데
위대한 침묵이건 큰 침묵인건 침묵이 필요합니다.
나의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울려 퍼지도록.
고요 가운데 하느님이 말씀하시도록.
내 마음 안에서
온갖 욕구와 아우성과 주장을 잠재우고
온갖 미움과 분노와 감정들을 잠재워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기도가 이루어지고,
내 입이 열려 영가가 울리고,
오늘 복음의 사람처럼 말하지 말라고 엄히 명해도
잠잠치 못하고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널리 전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훤히 제 안을 들여다 보고 계심을 이제는 알겠나이다.
묵묵히 침묵으로 계시는 주님의 말씀을 묵묵히 침묵으로 듣겠나이다.
태초에 한 목소리가 있었음을 성경이 전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말씀이시기 때문에 제 자신이 먼저 들어야하는
처지이고 그 말씀이 제 마음을 관통해서 다시 제 자신의
언어로 발설하는 대화법을 배워야겠습니다.
누군가와 말을 하긴 했는데 하고난 후 돌아서는 마음에
공허함만이 가득히 밀려오는 그런 순간,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마음 없이 인간의 목소리만,
난무했기 때문이다 싶네요.
꼭 해야 할 말보다 하나 마나 한 말,
해서는 안 되는 음습한 이야기에 더 유혹을 느끼는 그런 분위기에
저도 한 몫 하면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누굴 탓합니까!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나의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울려 퍼지도록.
고요 가운데 하느님이 말씀하시도록.“
그래도 노력하는 하루 살아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