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저는 고독과 함께 허무도 얼마간 즐기는 사람입니다.
어떤 때는 허무 예찬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옛날부터 코헬렛서-옛날에는 전도서라고 했음-를 좋아했고,
코헬렛서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들은 이 구절을 특히 좋아합니다.
며칠 전 어떤 분과 얘기를 나누다가 뜨는 해와 지는 해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그분이 당신은 해뜰 때보다 해질 때가 더 아름답다고 하셨지요.
그때 아무 대구를 하지 않았지만 저도 해질 때를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것은 봄철 피어나는 꽃들의 아름다움도 아름답지만
가을철 지면서도 아름다운 단풍의 아름다움도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아가씨도 아름답지만 흰 머리에 주름진 얼굴임에도
아름다운 아름다움이 더 아름다운 것과 같이
저무는 아름다움 또는 소멸의 아름다움이 제게는 더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얘기하면 소멸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저물어가고 소멸되어가는데도 아름다운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니까 저물어가고 소멸되어가는 것을
싫어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소멸은 아름다운 소멸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때 내가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나만 죽는 것이 두렵거나 나만 죽기에 허무합니다.
나는 죽은데 다른 것들은 다 그대로 있고
오늘 코헬렛서의 말대로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지만
태양은 여전히 뜨고지고 땅도 영원히 그대로이기에
나 혼자 이 세상에서 퇴장하는 것이 쓸쓸하고 허무한 것입니다.
아무도 나와 함께 같이 죽어주지 않고,
아무도 나 대신 죽어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럴 거라고 기대하고 믿어왔다면
그렇게 믿어온 나의 삶이 허무할 것이고 허무해야 합니다.
내가 죽는다고 이 땅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죽는다고 누가 같이 죽어주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소멸은 이런 소멸을 직면한 소멸입니다.
이런 직면을 통해서 혼자 이 세상에서 퇴장하는 것이
쓸쓸하지도 허무하지도 싫지도 두렵지도 않게 된 소멸입니다
직면을 통해서 뭘 얻었고 어떤 경지에 이르렀기에?
내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고,
세상이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얻었을 때,
우리는 고독하지도 허무하지도 두렵지도 않는
담담한 가운데서 이 세상을 퇴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영원 앞의 허무)
http://www.ofmkorea.org/152120
16년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허무에서 발견하는 하느님)
http://www.ofmkorea.org/93917
15년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어떤 일에도 당황하지 않으려면)
http://www.ofmkorea.org/82836
14년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호기심과 관심)
http://www.ofmkorea.org/65505
13년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새로운 출발의 성사)
http://www.ofmkorea.org/56423
12년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감정의 과잉 이입)
http://www.ofmkorea.org/40452
11년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심심풀이 땅콩,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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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허무와 친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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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호기심과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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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허무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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