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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고 미싸빕”

오늘 예레미야서에 나온 말입니다.
생소한 말이지만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사면초가의 상태에 몰린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참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저는 마르고 미싸빕이 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마르고 미싸빕이 된 적이 거의 없음이 미안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사면초가에 몰린 분들에 대해서입니다.
이런 미안함은 인간된 情理로서 이해가 되지만,
그런데 부끄러움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레미야처럼 불의한 사람에 의해 사면초가에 몰린 적이 없고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위해 사면초가에 몰린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제가 불의와 적극적인 타협을 하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저는 불의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조용함으로써
소극적인 타협을 하는 것입니다.
하여 사람들과 척지지 않았고 그래서 궁지에 몰린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
다시 말해서 소극적 타협을 하는 이유는 대개 다음 몇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 불의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단한 것도 아닌데
그 사소한 것을 가지고 일일이 시비하여
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감수하는 것은 큰 불의에 대해서만이고
사소한 불의는 그냥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조심스러움 때문입니다.
대다수가 맞다고 하는데 나만 아니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기에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셋째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소극적인 타협을 하는 제일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두려움 때문입니다.
사면초가의 두려움을 감수할 정도로 진리를 사랑하거나
사면초가가 되어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외롭지 않은 사람만이
사면초가를 무릅쓰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이 두려움에 굴복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사면초가에 몰린 주님과 예레미아는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시다는 확신이 있으며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자신이 하는 말이나 하는 일이
다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얘기합니다.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주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나도 아버지 안에 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내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도 내 안에 계시기에
나는 진리 안에 있고 진리를 실천하고 있다는,
독선이 아닌 확신이 저에게 있기를.
나의 말은 나와 그의 우리 공동체가 정의롭기를 바라는,
그래서 시비가 아닌 사랑의 말이기를.
이 새벽 기원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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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요셉 2010.03.26 10:55:19
    그래요,
    첫 번째, 두 번째는 조금만 깨여있는 정신을 지닌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싶지만,

    세 번째는 자기성찰을 할 때 마다
    무의식 안에서 솟아올라와 목에 걸린 사과조각처럼
    늘 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데
    오늘 신부님의 용기 있는 자기고발의 글이 제 등짝을 치고
    목에 걸린 사과조각이 튀어나오는 시원함이 있네요.

    스승의 면모는 바로 이런 정직한 삶의 모습일겁니다.
    무슨 장황한 설교가 필요할까 싶네요!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고맙습니다.
  • ?
    홈페이지 삐에트로 2010.03.26 10:55:19
    불의에 맞서는 두가지 대조적인 모습이
    영화 '미션'에 잘 보여진다고 생각되는데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는 없는듯 합니다.
    무기를 들고 원주민들을 지키려 싸우는 멘도사 신부와
    아무런 대항의 무기도 없이 원주민과 함께 성체거동으로
    침략군과 맞서는 가브리엘 신부,
    87년도 이 영화를 보았던 감흥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겁함과 나약함이 아니라면
    우리들은 이 둘중의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까요
    하느님을 향한 서로 다른 두 행위.
    하지만 멘도사 신부가 총에 맞은채
    바닥에 쓰러져 누워 겨우 고개를 들고
    성체거동을 하며 나오는
    가브리엘 신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는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 이 영화의 압권으로 저에게 비쳐졌습니다.
    불의나 인권침해를 목도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이런 두 가지 양태의 하나를 살아가지만
    드러나시는 분은 행위 너머의 오로지 하느님 뿐이겠지요.
    그런 하느님을 믿고 그분을 모시는 일이
    곧 우리가 하느님안에 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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