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오늘 이 갈라티아서를 읽으면서 탁 드는 생각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보다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하느님을 믿는 사람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낫겠다는 거였습니다.
사실 이것으로 오늘 독서를 통한 성찰은 그쳐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점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성찰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더 성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기에 여기에 살을 좀 더 붙여보겠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오늘 바오로 사도가 얘기하듯이 율법으로도 가능한데
그것은 율법이 감시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를 감시하고 있던 율법이 우리를 찌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것은 죄짓지 않는 것이 인생의 제일 중요한 목표일
때이고 그래서 율법으로 죄짓지 않을 때 인생을 망치지 않을 수는 있지요.
그러나 이것은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일 뿐 그러니까 기껏해야
완전한 사람이 된다거나 결벽 주의자처럼 무결점의 사람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설사 율법을 지킴으로써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라도
이런 사람이 행복하고, 인생을 잘 산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완벽 주의자나 결벽 주의자는 자기도 힘들고 남도 힘들게 하여
그 주변에 아무도 사람이 끼지 않는 불행을 초래할 뿐입니다.
너무도 깨끗한 집에는 감히 발을 들여놓기 힘든 것과 같지요.
그런데 관계를 살지 않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살지 않고도
이런 사람이 행복하고, 인생을 잘 산 거라고 할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잘 지켜 죄없고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과의 관계적 행복을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고,
하느님께서 믿어주시는 자가 되는 것, 그 얼마나 흐뭇합니까?
저는 옛날 선생님께서 저를 믿어주실 때 그리고
사람들이 저를 믿어줄 때 믿음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저는 제 삶을 스스로 점검하고 옳게 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믿는 관계일 때 서로 자신을 개방하고
상대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믿음의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갈라티아서는 서로 믿음으로써 일치를 이루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모두가 하나 되는 차원을 얘기합니다.
차별이 없는 하나일 뿐 아니라 분열이 없는 완벽한 하나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나 믿는 관계보다 더 행복한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믿음의 일치보다 더 완전한 일치가 사랑의 일치이기 때문입니다.
일치를 이루기만 하면 됐지 사랑의 일치가 믿음의 일치보다
왜 더 완전하고 더 나은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 왜 더 완전하고 나은지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오로 사도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 중에
사랑이 최고라고 얘기했고 제가 생각하기에도 개방하여 하나 되는 것보다
자신을 무화하고 내어줌으로써 하나가 되는 것이 더 완전하고 뜨겁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완성이니 믿음에서 하나 되는 것에서 출발하여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으로 우리는 나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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