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얼마 전부터 열풍이 불기 시작한 마음공부와 마음수련이
지금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저도 2-30대 때는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따로 공부하지 않았어도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성격을 직관적으로 잘 파악하는 편이었습니다.
요즘도 있는지 모르지만 독심술讀心術이라는 것이 옛날에 있었지요.
그런데 이 독심술이란 것이 말 그대로 마음을 읽는 기술인데
저는 배우지 않고도 이 면에서 능력이 있었던 셈입니다.
아무튼, 남의 마음을 읽는 것이든 자기의 마음을 알아채는 것이든
이런 것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잘 가져가는 거지요.
이것이 너무도 중요하여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까지 하잖아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세상만사가 일체 마음 먹기에 달렸으니
어떻게 마음을 먹고 마음을 쓰느냐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고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 제가 저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고,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주 얘기해주는 '마음 다스리는 방식'이 있지요.
곧 '준다고 다 받느냐?'고 저에게든 남에게든 묻는 방식입니다.
누가 무엇을 아무리 줘도 받고 안 받고는 내 마음입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안 하고 안 받는 것이 우리지요.
그런데 유독 상처에 대해서만은 줘서 받았다고 합니다.
어떤 때 상처를 준 사람은 줄려는 마음이 없이 한 말인데도,
그러니까 상처를 준 것이 아닌데도 자기가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기에 상처를 준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나 있는 상처를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도 그가 살짝 건드린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마음 다스림을 오늘 필리피서 말씀처럼
주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 안에 간직하는 방식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수련, 영적인 마음수련이 이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주님의 말씀입니까?
이에대해 주님의 마음은 주인이 종과 같아지고,
하느님이 인간과 같아지는 마음이라고 필리피서는 이어서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같아짐과 낮아짐의 마음입니다.
엄마가 아이와 같이 걷기 위해서는 천천히 걸어야 하고,
아이와 같은 눈높이를 하기 위해서는 몸을 낮춰야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어린이와 같이 됨이 유치함이 아니고 사랑이듯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심도 세속화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거기서부터 아이를 끌어올려 성장케 하려는 엄마의 마음,
인성을 취하심으로 우리를 신성에 참여케 하려는 주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 안에 가득 담아야 할 우리임을 성찰케 되는 오늘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나의 행복입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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