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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를 성찰하게 되는 것은

제가 오늘 복음의 맹인처럼 주님께 자비를 구하기보다는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저의 육신의 형제들에게 자주 바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이제는 자식에게 뭘 해주려 들지 말고,

자식이 해주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왜냐면 이제는 해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 해주는 것을 받아야만 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이번 행정진 선출에서 저희 관구는

이제 저에게 양성을 받았던 형제들이 모든 책임을 맡게 되었고,

그래서 이제는 저도 그 형제들이 인사 명령을 내리는 대로 가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저를 점점 의탁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저보다 나이가 더 많은 저의 형제들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하던 가락 때문인지

저는 계속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려고 합니다.

 

헌데 제가 베풀 수 있고 또 사랑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나쁘다 할 수 없고

베풀어야겠지만 제 사랑에 불순물이 있어서 베풀려는 거라면 고쳐야겠지요.

 

불순물이란 앞서 봤듯이 베풂을 받기보다는 베푸는 사람,

다시 말해서 시혜자이고 싶은 교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풀 수 있고, 베푸는 사람인 것은 분명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베풀 것이 아무것도 없고, 베풀 마음 곧 사랑이 전혀 없는 것보다

베풀 것과 베풀 마음이 있는 것은 분명 좋고, 너무도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베풀 것과 베풀 마음이 있다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은 일이지만

그것 조금 있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할까요?

그것이 나를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하기라도 할까요?

 

나는 구원자가 아니고 하느님이 구원자시고,

나도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이잖습니까?

 

그런데 사랑을 베풀었다는 작은 만족에 취하고 착각을 하여

구원이 필요한 나라는 것까지 망각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錯覺妄覺.

착각과 망각.

이것이 저의 삶을 많이 그르치게 하는 것이고,

특히 신앙의 삶을 많이 그르치게 하는 거지요.

 

이런 면에서 오늘 맹인은 저에게 당연히 모범이고,

그래서 한 10여 년 전부터는 오늘 맹인을 본받아

'주님,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화살기도를 주문 외우듯이 하고,

미사 때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부분을 할 때도 마음을 담아 하곤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옛날에 제가 거부감을 많이 느끼던 부분이었는데

그래도 이제는 거부감이 없을 뿐 아니라 이 부분을 기도할 때 공손히

머리숙여지고 두손 모아지곤 하니 겸손 면에서 많이 나아진 셈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맹인에게서 더 본받아야 하고,

더 나아가야 할 것은 자비를 받고 난 뒤의 그가 한 행위입니다.

 

하느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따라 나선 것과

다른 사람도 하느님을 찬양케 한 것 말입니다.

 

그는 자비를 받고 입 싹 닦은 사람이 아니고 찬양과 추종으로 보답합니다.

병을 치유받은 이스라엘의 아홉 나병 환자는 병을 치유받고는

입을 싹 닦고 하느님 감사와 찬양을 하지 않아 주님의 노여움을 샀는데

오늘 맹인은 하느님 찬양에 이어 주님 추종까지 하니 그 모범이 완전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자비를 입은 사람이라면

하느님 찬양과 주님 따름이 그 결과로 나타나야 함을,

만일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 찬양과 주님 따름이 없다면 우리는

하느님 자비를 받지 않은 사람처럼 사는 것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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