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성령으로 태어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바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요.
‘영원한 생명’은 예수를 믿는 것부터 시작하고, 이는 곧 하느님의
보살핌을 신뢰하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는 가운데 거룩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간혹 영적인 것들을 취하려는 열성이 과하여 거룩한 것, 영적인 것들만 동경하며 온갖 유혹꺼리와 악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현재의 이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속의 ‘악’이 어디에서부터 왔고, 그것 때문에 우리와 이 세상이 더렵혀졌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우리를 살아가도록 보낸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만 속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은총과 진리로 늘 새로운 삶의 힘과 정화의 기회를 얻고 있는데, 바로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동물적인 육의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을 지향할 수 있고, 죄를 짓기도 하지만 우리 안에 심어진 거룩하고 선한 본성 때문에, 그리고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하느님의 절대적인 그 사랑을 받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무상으로 주어져도 느끼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 세상에 고아처럼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의 사랑을 받고,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영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위로부터, 그리고 영으로 거듭난 존재임을 깊이 성찰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신 예수님을 통하여 ‘영’으로 산다는 것이 이 세상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바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요.
‘영원한 생명’은 예수를 믿는 것부터 시작하고, 이는 곧 하느님의
보살핌을 신뢰하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는 가운데 거룩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간혹 영적인 것들을 취하려는 열성이 과하여 거룩한 것, 영적인 것들만 동경하며 온갖 유혹꺼리와 악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현재의 이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속의 ‘악’이 어디에서부터 왔고, 그것 때문에 우리와 이 세상이 더렵혀졌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우리를 살아가도록 보낸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만 속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은총과 진리로 늘 새로운 삶의 힘과 정화의 기회를 얻고 있는데, 바로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동물적인 육의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을 지향할 수 있고, 죄를 짓기도 하지만 우리 안에 심어진 거룩하고 선한 본성 때문에, 그리고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하느님의 절대적인 그 사랑을 받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무상으로 주어져도 느끼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 세상에 고아처럼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의 사랑을 받고,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영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위로부터, 그리고 영으로 거듭난 존재임을 깊이 성찰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신 예수님을 통하여 ‘영’으로 산다는 것이 이 세상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사람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바뀌는 것..
예수님의 방법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것..
그 다음은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