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제가 저에 대해 자랑하듯이 얘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도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인사이동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적이 없을뿐더러 인사이동에 대해 관구장님이 제 의견을 물어오셔도
제 뜻을 말하지 않고 백지 수표 맡기듯 관구장님 손에 맡겼다는 겁니다.
이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자랑할 것은 못 된다는 것이 오늘 성찰이고,
그 이유가 과대포장이거나 눈속임의 측면이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가 인사이동에 있어서 어떤 명령이든 그것에 순종하고,
그 이전에 아예 아무 의견도 가지지 않으려 함은 그것이
진정한 순종이라고 프란치스코가 가르치기 때문이었습니다.
토마스 첼라노의 성 프란치스코 전기는 프란치스코의 초기 형제들이
"거룩한 순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순종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들은 명령을 수행할 채비를 차렸다."고 전하고 있고,
프란치스코가 "요청을 해서 허락을 받는 것도 순명이지만, 요청 없이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거룩한 순명이라고 말하였다."라고 전합니다.
저도 이 가르침대로 살려고 했고, 지금까지는 이렇게 살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것은 어떤 소임이든 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고,
그러니 이것을 대단한 순종인 양 얘기할 것이 못 되지요.
실제로 저의 삶을 보면 인사이동과 같이 큰일들에 있어서는 이러했지만
일상의 작은 일들중에 싫어하는 것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니 저의 삶 대부분은 제좋을 대로 불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지요.
실상 이것이 문제입니다.
수도생활 중 십여 번의 인사이동에 순명을 잘한 것을 가지고
일상의 수만 번, 아니 수십, 수백만 번을 순명치 않고
제좋을 대로 했음에도 순명을 잘한 것처럼 생각하고
더 나아가 자랑까지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의식의 순종을 아무리 잘했다 해도 무의식의 순종을 잘하지 않으면
우리의 순종생활을 잘했다고 절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행위의 대부분을 좌우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쉬운 예로 우리는 물을 먹으면서 물 마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일까 생각지
않고, 반찬을 먹으면서 무엇을 먹는 것이 하느님 뜻일까까지 생각지 않지요.
그냥 생각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지 그 사소한 것까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옛날 제가 아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식당에 들어가면 주님께서
앉을 자리까지 지정해주시고, 무엇을 먹어야 할지도 가르쳐주셨답니다.
물론 이것은 병적인 것이니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지만
깨어 있으라는 주님 말씀대로 의식이 깨어 있지 않으면,
그리고 무의식까지 주님 원하시는 것에 맞춰져 있지 않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제좋을 대로 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렇게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까지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려고 우리의 전 존재가 깨어있을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주님을 사랑해야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랑은 총동원령입니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의식은 물론 무의식까지 그러니까
우리 전 존재가 사랑하는 이에게 깨어있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기도 묵상>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당신을 항상 생각함으로써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게 하시고,
당신을 항상 갈망함으로써 넋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게 하시며,
우리의 모든 지향을 당신께 두고, 모든 것에서 당신의 영예를 찾음으로써
정신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기력과 영혼의 감각과
육신의 감각을 당신 사랑의 봉사를 위해서만 바치고 다른 데에 쓰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모든 힘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나이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반항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http://www.ofmkorea.org/96625
15년 대림 제3주간 화요일
(겨를이 없는 사람?)
http://www.ofmkorea.org/85148
14년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주님 말씀의 맏이들)
http://www.ofmkorea.org/72911
13년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족보 감상 소감)
http://www.ofmkorea.org/58555
12년 대림 제3주간 화요일
(들러리)
http://www.ofmkorea.org/46239
11년 대림 제3주간 화요일
(그 입은 아가리도 주둥이도 아니다)
http://www.ofmkorea.org/5427
09년 대림 제3주간 화요일
(말씀 자리)
http://www.ofmkorea.org/3398
08년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실천적 무신론)
http://www.ofmkorea.org/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