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사람들의 이 물음은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어제 말씀 나누기에서 저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니
우리가 뭐 대단한 것 한다고 깝죽대지 말고
하느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보고 믿기나 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확한 표현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
즉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고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으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믿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하시려는지를 묻습니다.
저는 이 말에서 공손함이 느껴지지 않고
뭔가 도전하고 시비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믿는 것은 자신이고
믿지 못한다면 믿지 못하는 자신을 바꾸어야 하는데
믿지 못하는 자신을 바꾸기는커녕 그런 자신을 그대로 놔두고
어디 그럴 마음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 믿게 하라고 뻗댑니다.
제가 종신 서원 준비를 위한 한 달 피정을 할 때입니다.
그런데 종신 서원을 앞 둔 사람이 영적으로 너무 무미건조하여
도대체 하느님이 계신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지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하느님 체험을 진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한 끼에 한 숟가락만 먹는 단식 피정에 돌입하였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지 않으니 잠이 별로 없게 되어
자다가 아주 이른 새벽에 잠이 깨곤 하였는데
그렇게 10여 일이 지난 새벽에도 일찍 잠이 깼습니다.
그런데 80년대 초, 그 피정 집은 시골이라 그랬는지
형광등이, 빨리 또는 늦게, 제멋대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10분 있다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잘 때 머리맡에다 성냥과 초를 준비해 놓았는데
그날도 불이 즉시 안 들어와 성냥을 찾아 불을 키려고 하였습니다.
그 순간,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 당신이 계시고 저를 사랑하신다면
제가 성냥을 키는 순간 동시에 형광등 불이 들어오게 하세요.’
이렇게 하느님께 요구하고 성냥을 켰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동시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그때 저는 기쁘기보다는 너무도 두려워 꼼짝 할 수 없었습니다.
몸이 그대로 굳은 상태에서 몇 시간을 있는데
그러는 중에도 머리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오갔습니다.
‘기적이다, 아니다.’
‘우연이다, 자연 현상이다.’ 등 등.
이렇게 압도된 상태에서 몇 시간인지 모르게 지나고 나서
날이 밝아오면서 몸이 풀려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뜨는 해가 눈에 들어왔고,
그 해를 보는 순간, 저는 머리를 한 대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저 뜨고 지는 해가 바로 기적이다.
저 엄청난 해가 뜨고 지는데 내가 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만이 아니라 인간이 한 것이 무엇 하나 있는가?”
그렇게 모든 것을 보니 일상의 모든 것이 다 기적이었습니다.
풀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것이 기적이고
인간 한 생명, 생명이 다 기적이고,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널려있는 기적,
널려있는 하느님의 표지들,
널려있는 하느님 사랑의 표지들은 놔두고
성냥불과 형광등 불이 동시에 들어오는 것만을
하느님 사랑의 표지로 한정하고
그렇게 하느님 사랑을 느끼게 하라고
하느님께 도전하고 시험하였던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그렇게 하느님 사랑에 도전하고 시험을 하였고,
그렇게 하느님 체험을 하고 종신서원을 했습니다만
아직도 가끔 하느님 사랑을 시험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요즘 같으면 “음악회가 성사 되어 하느님,
당신의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믿게 해주세요.”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사람들의 이 물음은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어제 말씀 나누기에서 저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니
우리가 뭐 대단한 것 한다고 깝죽대지 말고
하느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보고 믿기나 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확한 표현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
즉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고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으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믿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하시려는지를 묻습니다.
저는 이 말에서 공손함이 느껴지지 않고
뭔가 도전하고 시비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믿는 것은 자신이고
믿지 못한다면 믿지 못하는 자신을 바꾸어야 하는데
믿지 못하는 자신을 바꾸기는커녕 그런 자신을 그대로 놔두고
어디 그럴 마음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 믿게 하라고 뻗댑니다.
제가 종신 서원 준비를 위한 한 달 피정을 할 때입니다.
그런데 종신 서원을 앞 둔 사람이 영적으로 너무 무미건조하여
도대체 하느님이 계신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지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하느님 체험을 진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한 끼에 한 숟가락만 먹는 단식 피정에 돌입하였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지 않으니 잠이 별로 없게 되어
자다가 아주 이른 새벽에 잠이 깨곤 하였는데
그렇게 10여 일이 지난 새벽에도 일찍 잠이 깼습니다.
그런데 80년대 초, 그 피정 집은 시골이라 그랬는지
형광등이, 빨리 또는 늦게, 제멋대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10분 있다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잘 때 머리맡에다 성냥과 초를 준비해 놓았는데
그날도 불이 즉시 안 들어와 성냥을 찾아 불을 키려고 하였습니다.
그 순간,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 당신이 계시고 저를 사랑하신다면
제가 성냥을 키는 순간 동시에 형광등 불이 들어오게 하세요.’
이렇게 하느님께 요구하고 성냥을 켰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동시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그때 저는 기쁘기보다는 너무도 두려워 꼼짝 할 수 없었습니다.
몸이 그대로 굳은 상태에서 몇 시간을 있는데
그러는 중에도 머리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오갔습니다.
‘기적이다, 아니다.’
‘우연이다, 자연 현상이다.’ 등 등.
이렇게 압도된 상태에서 몇 시간인지 모르게 지나고 나서
날이 밝아오면서 몸이 풀려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뜨는 해가 눈에 들어왔고,
그 해를 보는 순간, 저는 머리를 한 대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저 뜨고 지는 해가 바로 기적이다.
저 엄청난 해가 뜨고 지는데 내가 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만이 아니라 인간이 한 것이 무엇 하나 있는가?”
그렇게 모든 것을 보니 일상의 모든 것이 다 기적이었습니다.
풀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것이 기적이고
인간 한 생명, 생명이 다 기적이고,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널려있는 기적,
널려있는 하느님의 표지들,
널려있는 하느님 사랑의 표지들은 놔두고
성냥불과 형광등 불이 동시에 들어오는 것만을
하느님 사랑의 표지로 한정하고
그렇게 하느님 사랑을 느끼게 하라고
하느님께 도전하고 시험하였던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그렇게 하느님 사랑에 도전하고 시험을 하였고,
그렇게 하느님 체험을 하고 종신서원을 했습니다만
아직도 가끔 하느님 사랑을 시험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요즘 같으면 “음악회가 성사 되어 하느님,
당신의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믿게 해주세요.”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저에 기적은
이곳에서 매일 글을 접하며 하루를 묵상할수 있음 입니다
직장에 억매여 절제된 시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수있음은
이것이 기적입니다
음악회를 위한 기도 드립니다 ...
하늘에 빛나는 태양을 보며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저는 사실 음악회 하든 못하든..꼭 같은것 같아요~ㅋㅋ^^~
그래요 !!! 신부님 !!!
제가 하루 하루 살아 가는 것이 기적 입니다.
순간 순간에 하느님을 보여 주시니 감사 합니다.
"아직도 가끔 하느님 사랑을 시험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요즘 같으면 “음악회가 성사 되어 하느님,
당신의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믿게 해주세요.”하고 말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속마음을 모르지 않듯이
하느님께서도 이 어린이와 같은 마음에
오히려 흐뭇해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제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는요.^^
어제는 4대강 개발 저지 생명 살리기 위한
생명평화미사에 동참하기 위해 금강에서 함께했습니다.
각자 쓰고 싶은 말을 적는 난에 다음과 같이 셨습니다.
“이다음에 후손들이 ‘우리 부모들은 미쳤었나봐!’
라는 말 듣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