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만남을 주제로 나눔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마남 얘기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만남에 비춰 우리의 만남도 보면 좋을 것입니다.
순전히 인간적인 눈으로 두분의 만남을 생각해봅시다.
두분은 친척간이라고 하니 자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는 있겠지만
일부러 찾아가서 만날 정도로 친밀함이나 일이 있는 사이는 아닐 겁니다.
만난다 하더라도 덤덤하거나 예의 차리거나 부담스러운 만남일 것입니다.
적어도 만남이 오늘 복음이 얘기하는 것처럼 기뻐뛰는 만남은 아닐 겁니다.
왜냐면 마리아는 갓 결혼적령기의 처녀이고 엘리사벳은 친척 할머니이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할머니와 손녀 사이, 더 정확히 얘기하면
친척 할머니와 손녀 사이에 같이 임신하여 만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임신하고 출산하여 늦둥이를 낳은
시어머니가 부끄러워하여 그 늦둥이를 돌보지 않았다는 얘기는 종종
들었는데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는 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보다
훨씬 더 어색하고 부끄러워 대면하고 싶지 않은 관계였을 겁니다.
그러므로 이 두 분의 관계는 이런 인간적인 관계를 뛰어넘는 만남이고,
자기들 안에서 하느님께서 역사하심을 함께 느낀 여인들의 만남입니다.
자기들 안에서 하느님께서 역사하신 흔적은 물론 태중의 아이들이지요.
엘리사벳은 아마 만삭의 몸일 것이고 마리아는 이제 갓 임신한 몸인데,
그래서 엘리사벳 태중의 요한은 임신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왔을 때
이미 뱃속에서 역시 태아인 예수를 보고 기뻐뛰놀았다고 합니다.
아무튼, 두 분의 만남에서 제가 오늘 교훈삼고 싶은 것은
우리의 만남도 서로 안에서 하느님의 역사하신 흔적을
같이 확인하는 그런 만남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냐면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두 분에게만 있고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 분명 아닌,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도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경험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 교회 공동체나 수도 공동체 얘기를 할 때
우리 인간들이 저지른 죄들이나 잘못에 시선이 꽂혀
만나 대화하고 나면 마음이 몹시 어두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심을 가지고 그러니까 영안으로 우리 공동체를 보면
시기 질투한 형제들의 악한 행위를 통해서도 요셉을 이집트로
가게 하고 결국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그 원대한
역사하심을 보듯 우리 형제들의 죄스런 모습들 넘어서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은총을 볼 수 있고, 그런 만남을 하고 난 뒤에는
오늘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처럼 우리도 기쁨에 차게 되지요.
우리가 진정 회개를 한다면 죄만 보지 않고 은총도 본다고 하지요.
죄를 보는 눈이 전혀 없으면 회개는 아예 시작도 못한 것입니다.
죄만 보면 회개의 시작은 하였지만 아직 미완성이고 불완전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를 보고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은총을 같이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영안과 회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때 우리의 회개는 완성되고 완전해질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대림 시기 이 회개를 하여 마리아와 엘리사벳처럼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조심스런 은총 관리)
http://www.ofmkorea.org/300123
18년 12월 21일
(나의 태胎는?)
http://www.ofmkorea.org/177254
15년 12월 21일
(그것은 성령에 의한 것)
http://www.ofmkorea.org/85293
13년 12월 21일
(엘리사벳처럼 기쁜가?)
http://www.ofmkorea.org/58732
12년 12월 21일
(수없이 많은 많은 만남 중에 나의 만남?)
http://www.ofmkorea.org/46466
11년 12월 21일
(의심은 불가능을 보고, 믿음은 가능성을 본다.)
http://www.ofmkorea.org/5439
09년 12월 21일
(믿고 또 믿어 행복한 분)
http://www.ofmkorea.org/3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