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는 상황에서
주님과 제자들의 태도는 매우 대조됩니다.
주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도 제자들을 걱정하십니다.
마치 어린 자녀를 이 세상에 두고 떠나는 어미의 마음입니다.
이에 비해 제자들은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는데도
어떻게 되실지 주님께 대한 걱정은 않고
자기들이 어떻게 될지 근심에 쌓여 있습니다.
철부지 이기주의자의 모습입니다.
어제는 월 피정 지도를 위해 수녀원에 갔습니다.
산보를 하면서 아침 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근처 동네 사람이 수녀원에 와서 체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른 많은 곳 놔두고 14처 십자가의 길,
맨 끝에 피에타 상이 있는 곳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Passion(수난)을 Compassion(동병상련)하는
그 피에타 상이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그래서 그에게는 피에타 상으로 인해 동병상련이 일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건강만이 중요하고
그래서 거기서 그는 건강 수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독한 단절을 보았습니다.
어떤 의미도 무의미하고,
어떤 감동도 무발생하고,
어떤 표지도 무의미하고,
그래서 어떤 성사(Sacramentum)도 무발생합니다.
이런 묵상을 하다가
그 사람에게 향하던 눈을 저에게로 돌렸습니다.
나는?
어쩌면 그만큼 완전한 절연체(絶緣體)는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전도체(傳導體)도 아닙니다.
그저 적당한 선에서 느끼고, 받아들이고, 반응합니다.
그러다 그 선을 넘으면 마치 과부하가 걸리면 전기가 자동 차단되듯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만 생각하고
아예 눈을 감아버리고, 감각을 닫아버립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과정을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동결 반응-무감화(numbness)-무력감-전위.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사랑과 관심을 동결할 때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무감화에 이르고,
무감화가 계속 될 때 아무 의욕이 없는 무력화로 발전하며
무력화가 발전하여 신체화 또는 폭력이나 중독이 되는
전위(Displacement)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이 아침, 복음을 읽으며
고통 절연이 행복 절연에 이르지 않을까 깊이 반성합니다.
주님과 제자들의 태도는 매우 대조됩니다.
주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도 제자들을 걱정하십니다.
마치 어린 자녀를 이 세상에 두고 떠나는 어미의 마음입니다.
이에 비해 제자들은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는데도
어떻게 되실지 주님께 대한 걱정은 않고
자기들이 어떻게 될지 근심에 쌓여 있습니다.
철부지 이기주의자의 모습입니다.
어제는 월 피정 지도를 위해 수녀원에 갔습니다.
산보를 하면서 아침 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근처 동네 사람이 수녀원에 와서 체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른 많은 곳 놔두고 14처 십자가의 길,
맨 끝에 피에타 상이 있는 곳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Passion(수난)을 Compassion(동병상련)하는
그 피에타 상이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그래서 그에게는 피에타 상으로 인해 동병상련이 일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건강만이 중요하고
그래서 거기서 그는 건강 수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독한 단절을 보았습니다.
어떤 의미도 무의미하고,
어떤 감동도 무발생하고,
어떤 표지도 무의미하고,
그래서 어떤 성사(Sacramentum)도 무발생합니다.
이런 묵상을 하다가
그 사람에게 향하던 눈을 저에게로 돌렸습니다.
나는?
어쩌면 그만큼 완전한 절연체(絶緣體)는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전도체(傳導體)도 아닙니다.
그저 적당한 선에서 느끼고, 받아들이고, 반응합니다.
그러다 그 선을 넘으면 마치 과부하가 걸리면 전기가 자동 차단되듯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만 생각하고
아예 눈을 감아버리고, 감각을 닫아버립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과정을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동결 반응-무감화(numbness)-무력감-전위.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사랑과 관심을 동결할 때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무감화에 이르고,
무감화가 계속 될 때 아무 의욕이 없는 무력화로 발전하며
무력화가 발전하여 신체화 또는 폭력이나 중독이 되는
전위(Displacement)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이 아침, 복음을 읽으며
고통 절연이 행복 절연에 이르지 않을까 깊이 반성합니다.
그리고는 늘 항상 우리 주님의 옷 자락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제는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평화미사에 다녀왔습니다.
김정훈 신부님도 멀찍이서 뵐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한 마음 보탠다고 생각하니 마음 뿌듯했고,
창조된 모든 생명이 하나가 되길 바라는
순수한 사람들의 연대 속에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어떤 의미,
어떤 감동,
어떤 표지를 가슴으로 느끼며
“강물아 미안해 우리가 지켜 줄께!”
마음에 새기며 돌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