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은 철저히 신과 단골 사이의 존재입니다.
무당도 보통 때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위해 자기 신에게 치성을 드리고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만
무당인 한에는 철저히 신과 단골을 위한 존재입니다.
단골의 청을 신에게 아뢰고
신의 뜻, 신이 내린 말을 단골에게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그의 Raison d`etre(존재이유)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대사제이신 주님의 기도입니다.
대사제도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존재로서
이제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기도하십니다.
이 기도에는 먼저 당신의 사제직에 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당신의 사제직은 당신이 맡으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맡기신 것임을 고백합니다.
아버지께서 사람들을 당신에게 주셨고
아버지께서 사람들에 대한 권한을 주셨으며
아버지께서 일과 사명을 맡기셨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맡겨진 권한과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맡겨진 것은 권한이자 사명으로서
당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그 엄청난 것이
권한이자 사명으로 주어졌음을 고백하며,
그 영원한 생명이란 어떤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분을 아는 것이요,
예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사제이신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려주셨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셨으며
당신의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온 것임을 믿게 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대사제의 뒤를 따라 사제직을 살아야 하는 우리.
우리에게 맡겨진 권한과 사명에 대해 묵상합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권한과 사명이 맡겨졌음을 묵상합니다.
먼저 모든 사람이 나에게 맡겨졌음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줘야 하는,
그 엄청난 사명이 맡겨졌음을 묵상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반성합니다.
이 모든 사람이 맡겨진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지 반성합니다.
이런 엄청난 사명이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기보다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합니다.
그리고 사명 수행 방식에 대해서도 반성합니다.
하느님을 알게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데
하느님을 빙자하여 자기 일이나 하고
하느님을 알게 하기보다 거창한 사업이나 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보다 자기주장을 내세움으로써
내가 영광을 받으려 하지 않았는지 반성합니다.
무당도 보통 때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위해 자기 신에게 치성을 드리고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만
무당인 한에는 철저히 신과 단골을 위한 존재입니다.
단골의 청을 신에게 아뢰고
신의 뜻, 신이 내린 말을 단골에게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그의 Raison d`etre(존재이유)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대사제이신 주님의 기도입니다.
대사제도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존재로서
이제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기도하십니다.
이 기도에는 먼저 당신의 사제직에 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당신의 사제직은 당신이 맡으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맡기신 것임을 고백합니다.
아버지께서 사람들을 당신에게 주셨고
아버지께서 사람들에 대한 권한을 주셨으며
아버지께서 일과 사명을 맡기셨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맡겨진 권한과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맡겨진 것은 권한이자 사명으로서
당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그 엄청난 것이
권한이자 사명으로 주어졌음을 고백하며,
그 영원한 생명이란 어떤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분을 아는 것이요,
예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사제이신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려주셨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셨으며
당신의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온 것임을 믿게 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대사제의 뒤를 따라 사제직을 살아야 하는 우리.
우리에게 맡겨진 권한과 사명에 대해 묵상합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권한과 사명이 맡겨졌음을 묵상합니다.
먼저 모든 사람이 나에게 맡겨졌음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줘야 하는,
그 엄청난 사명이 맡겨졌음을 묵상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반성합니다.
이 모든 사람이 맡겨진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지 반성합니다.
이런 엄청난 사명이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기보다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합니다.
그리고 사명 수행 방식에 대해서도 반성합니다.
하느님을 알게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데
하느님을 빙자하여 자기 일이나 하고
하느님을 알게 하기보다 거창한 사업이나 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보다 자기주장을 내세움으로써
내가 영광을 받으려 하지 않았는지 반성합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습니다.
요셉님의 글을 감동적으로 읽고
많이 반성하고 회개 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어느 봄날 성당 가던 중 도로변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노숙자가 있었고 그런 분들을 받는 무료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미사시간이 바쁘다는 이유로,
나 몰라라 하고 가는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미사성제를 드리는 목적이 무엇인가!
몇 걸음이나 갔을까,
아파트 담장 너머에 핀 하얀 목련꽃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그 순간은 목련 꽃을 보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감탄사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사람들을 당신에게 주셨고
아버지께서 사람들에 대한 권한을 주셨으며
아버지께서 일과 사명을 맡기셨음을“ 모르지 않는
양심의 확성기가 나의 귀전을 때렸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찬미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몇날 며칠을 씻지 않아 청국장 띄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바지에는 소변을 지린 날이 여러 날 되어 그 지린내가
숨을 막히게 하는 이와 함께 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네요.
영원한 생명을 줘야하는 그 사명이 엄청난 이유는
함께 울어주고
함께 비를 맡는 것,
그것이 어렵고 부담스러워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요,
고맙습니다.
공동의 직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묵상 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