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심으로
우리 인간이 신성에 참여케 되었다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미사 때 사제는 포도주와 물을 섞으며 이렇게 혼자 기도합니다.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케 하소서.”
시소와 같은 것이지요.
한쪽이 내려가면 다른 한 쪽이 올라가는 것 말입니다.
주님의 내려오심으로 우리가 올라가고,
주님이 인간이 되심으로 우리는 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지만 초대되어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면”입니다.
“주님의 어머니와 형제가 된다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혈통적으로 어머니와 형제가 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것의 의미는 신모(神母)가 되고 신형(神兄)이 된다는 거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높아지는 일이 하느님 말씀의 실행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의 실행이 무엇이기에?
이때의 하느님 말씀의 실행은 단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순종 잘 하는 착한 자녀의 실행 정도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인간사에서는 어른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고,
권력자의 말에 절대 복종을 하면 그에 따르는 지위를 얻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 말씀을 잘 들으면
하느님께서 그 상으로 신성에 참여케 해주신다는 뜻인가요?
그런 뜻도 되겠지만 그 이상의 뜻일 겁니다.
그 이상의 어떤 뜻?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말씀이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온전히 그분의 존재가 되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존재로 완전히 이루시는 분이신 거지요.
우리는 어떤 때 말만 하고 실천이 없으며,
속마음과 말이 다릅니다.
그리고 설혹 말과 행동, 말과 마음이 일치하더라도
존재가 말이 되지는 못하고,
적어도 하느님의 말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그러므로 단지 착한 하느님의 아들로
말씀하시는 대로 군소리 말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격상이 아니고 격하입니다.
종처럼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존재로 하느님의 말씀이 되라는 초대,
하느님의 말씀을 존재로 이루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가 되라는 초대이고,
우리가 그런 존재임을 알라는 깨우치심입니다.
엄청난 초대인 거고
엄청난 깨달음을 촉구하시는 거지요.
그래서 이 말씀에 살짝 두려움마저 느끼는 오늘입니다.
하느님 말씀의 실행이 무엇이기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자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악습 및 죄악과 더불어 자신들의 육신을 미워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푸소서.
‘회개하는 이’ 앞부분을 기도문으로 만들어 매일 기도를 드리지만,
삶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없습니다.
기도조차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은 부끄러운 저의 내면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주신 엄청난 보화를 찾아 새로운 다짐으로 내적 여정을 떠납니다.
“하느님 말씀의 실행”을 통해......,
감사합니다.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