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오늘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한동안 평안을 이루고
신자들의 수가 늘어났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성령의 격려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얘기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격려를 받는 것에 대해서 묵상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격려를 받으면 좋을 텐데
받지 않는다면 왜 받지 않는지 그것에 대해서도 보았습니다.
실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으로 받는 것이 참 많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받기도 하고 싫어하는 것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은총을 받고,
사랑을 받고,
이해를 받고,
칭찬과 상을 받고,
위로와 격려를 받는가 하면
미움을 받고,
오해를 받고,
비판과 비난을 받고,
벌이나 피가 철철 나는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거나 받지 않는 것에는
받는 나도 있지만 주는 누군가가 있어서
-주니까 받거나
-주어도 받지 않거나
-주는 대로 받거나
-선택해서 받거나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니까 받지 안 주는 데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줘도 안 받으면 그만이고,
그래서 주는 대로 받는 편인 사람도 있지만,
줏대가 센 사람은 주는 대로 받지 않고 선택해서 받는데
다만 그 선택의 기준이 좋고 싫음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고 나쁨인 사람 곧 선택의 기준이 선악인 사람도 있지요.
그러므로 누가 성령의 격려를 받지 않는다면
성령의 격려보다는 인간의 격려를 원하는 사람이거나
나는 누구의 격려도 필요치 않다고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또는 성령의 격려보다는 인간적인 격려를 원하기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격려는 우리에게 달콤한 경우가 많지만
성령의 격려는 십자가나 수난을 감수하라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지요.
그런가 하면 비슷한 맥락에서 격려보다는 위로를 원하기에,
다시 말해서 사람의 격려건 성령의 격려건
격려보다는 위로를 더 원하기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격려'를 개신교 성경은 '성령의 위로'로
번역하고 영어도 'consolation of the Holy Spirit'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원래 이 말이 격려, 위로, 도움, 후원의 뜻을 다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위로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슬픔을 토닥여주는
것이라면, 격려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라고
심리적으로나 영적으로 힘을 보태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격려보다 위로를 더 좋아할 수 있고,
특히 십자가와 수난을 감수하라는 성령의 격려보다
인간의 달콤하거나 따듯한 위로를 더 바랄 수가 있겠지요.
어쨌거나 우리는 위로건 격려건 그것을 성령으로부터
잘 받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는 오늘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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