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바오로는 에페소를 떠나면서 교회의 원로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원로들에게 하는 첫 말이 자신을 잘 보살피라는 말인 겁니다.
전에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양 떼를 잘 보살피라는 말만 보고,
자신을 잘 보살피라는 말은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이 구절도
눈에 들어와 새삼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왜 전에는 이 구절을 보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번에는 이 구절이 어찌 눈에 들어왔을까?
전에 이 구절을 보지 못한 것은 제가 삶을 잘 못 살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너무 양 떼를 보살피는 것 또는 너무 남을 돌보는 것에
신경 쓰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거나 보살피지 못했던 거지요.
그러다 작년 하나의 계기가 제게 있었습니다.
대상포진과 자율신경 이상이 같이 제게 온 것인데
마라톤을 뛸 정도의 건강에 자신하고 있던 저에게
'어? 나도 아프네!' 하는 큰 것은 아니지만 놀라움이랄까 충격이 왔지요.
의사의 말이 둘 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그때 제가 피식 웃으면서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그리고 '나는 요즘 큰 책임을 다 놔서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다고.' 하니
의사가 하는 말이 이런 분들이 더 문제라고 하면서
축적된 스트레스가 젊었을 때는 견딜 힘이 있어서 나타나지 않다가
나이 먹어 그러니까 힘이 전보다 떨어져서 나타나는 것인데
이제 자기 몸을 보살필 때가, 내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아주고 적절히 돌봐야 할 때가 왔음을 몸이 신호보낸 거라는 거였습니다.
감기몸살이라는 것이 몸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 때
자기 몸을 돌보라고 신체가 자구책으로 반응하는 것이듯
우리의 많은 병이 평소에 잘 보살피지 않아서 오는 것이지요.
보살피라는 말이 보고+살피라는 말인데 우리는 사랑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돌봐야 할 사람을 신경 쓰느라 그럴 수도 있고,
사랑 때문이 아니라 괜히 눈치를 보거나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나는 안 보고 남만 보는, 그래서 자기를 살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 바오로가 자신을 보살피라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거나 몸뚱어리를 보살피라는 것 이상의 얘기지요.
자신이 하느님 말씀에 늘 깨어있는지,
바오로가 삼 년 동안 애써 가르친 말에 깨어있는지,
금이나 은이나 옷과 같은 것들에 욕심을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주님 말씀에 깨어있는지
원로들이 돌아보고 잘 살펴야 한다는 말이고
그래야 양 떼도 잘 보살필 수 있다는 거지요.
이렇게 자신을 보살피는 것은 마치 피정과 같이 모든 것을 떠나서
자신과 진실하게 대면하는 것이니 결코 이기적이지 않고,
설사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영적인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바오로도 분명 자신과 양 떼를 잘 보살피라고 얘기했잖습니까?
그러니 이웃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도
자신을 잘 보살펴야 함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이고,
자신과 대면하는 피정의 시간을 가져야 함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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