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조금 유치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엇갈리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봉쇄 수녀처럼 집밖을 나오지 않고 살아가는 클라라에 대한 얘기를 듣고
프란치스코가 먼저 클라라를 찾아가 만났다는 증언이 있는데
향기는 상자에 담아도 그 향기가 퍼지는 것처럼 클라라의 성덕이
그렇게 프란치스코에까지 전달돼 프란치스코가 찾아와 만났다는 얘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프란치스코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클라라가
와 주기를 프란치스코에게 청하여 만나게 되었다는 증언인데
클라라의 사촌 오빠인 루피노가 그 다리 역할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이 있음을 의식한 때문인지
성녀 클라라의 전기 작가인 토마스 첼라노는
두 사람의 만남은 성령께서 두 사람의 움직인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축일에 이 얘기를 길게 한 것은 당연히
두 분의 만남도 성령에 의한 만남이라는 것을 얘기하기 위함이고
우리의 만남들도 이런 만남이 되어야 함을 얘기하기 위함이지요.
어제 삼위일체 축일 강론에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음에 대해 얘기했지만
우리의 많은 만남이 성령에 이끌려야지 그 만남들이 성사가 됩니다.
우리의 많은 만남이 성사가 되지 못하고,
그저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계모임이나 친목회가 되거나
또는 좋아하는 것이 같은 사람끼리 동호회가 되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을 같이 험담하는 모임이 되는 것은
비록 악령에 이끌리지 않더라도 성령에 이끌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성사란 무엇입니까?
성사적인 만남이란 어떤 것입니까?
성사란 하느님이 그 일 안에 있는 것이고,
그 일을 통해서 하느님이 발생하는 것이니 성사적 만남도 그런 거지요.
오늘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난 것은 하느님이 자기들 안에서
이루신 일들 곧 은총을 같이 확인하고
같이 기뻐하며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함이었지요.
이런 뜻에서 우리의 만남들을 돌아보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의 만남 중에 이런 성사적인 만남들은 얼마나 되고
그저 그런 만남은 어떤 만남들인지.
또 어떤 만남은 은총이 발생하는 성사적인 만남이고,
어떤 만남은 죄악이 발생하는 만남인지.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우리도 마리아와 엘리사벳처럼)
http://www.ofmkorea.org/222805
18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나의 방문은?)
http://www.ofmkorea.org/124454
17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우리 기쁨의 정체)
http://www.ofmkorea.org/104334
13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내가 진정 반기는 것은?)
http://www.ofmkorea.org/53921
12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복덩이 예수)
http://www.ofmkorea.org/5887
11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만남이 성사다.)
http://www.ofmkorea.org/5111
10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중심을 잡으시는 하느님)
http://www.ofmkorea.org/4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