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오늘 복음은 하늘나라 임금님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았지만
초대에 응하지 않거나 예복을 입지 않아 벌 받는다는 비유얘깁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탁 들은 생각이 우리말에 있듯이
<굴러 들어온 복을 제 발로 걷어차는구먼!>입니다.
그러면서 불행한 사람이란 행복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듯
지옥에 가는 사람은 천국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비유를 볼 때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천국 가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열려있었고 적극적인 초대까지 받았습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렇게까지 초대 받았는데 안 갈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천국을 선택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아마 이들에게는 그곳이 천국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요.
천국을 천국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환락의 삶이 행복한 삶보다 더 행복해보이기에
참 행복을 행복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정확히 같습니다.
어리석음이 고통과 불행의 원인인 것이 바로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초대에 응하기는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복을 입지 않아서 쫓겨납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다 초대 받았다는 것과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났다는 것은 우리의 사려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그렇다면 악한 사람이란 말일까요?
그런데 복음을 보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길거리에서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아무나 불러오라고 하였으니
악한 사람이 한 사람만 불려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복이란 회개의 옷일까요?
악한 사람이지만 임금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얼른 회개자의 옷, 선한 사람의 옷으로 바꿔 입은 것일까요?
그런 뜻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혼인 예복이란 사랑의 옷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혼인잔치는 사랑의 잔치이니 사랑이 예복이겠지요.
여기에 놀라운 영성이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죄인도 사랑하고 천국에 초대하고,
죄인도 당신을 사랑하도록 초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아무나 불러오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아무나가 실제로는 아무나가 아니고 하느님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 끝까지 선한 사람도 없듯이
처음부터 악한 사람으로 태어나 끝까지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선한 사람이기도 하고 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 같이 햇빛을 내리시니
선한 사람, 악한 사람 할 것 없이 다 사랑하시고
죄와 악의 사람일지라도 당신을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더 큰 죄이고,
우리의 작은 악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더 큰 죄일 겁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다.^♡^
(우리가 서원을 하는 이유)
http://www.ofmkorea.org/256161
18년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우리는 '아무나'가 아니다.)
http://www.ofmkorea.org/140345
16년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아무나가 아니라 모두 초대 받은 우리)
http://www.ofmkorea.org/92684
15년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흥행에 실패한 혼인잔치)
http://www.ofmkorea.org/81477
12년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나의 혼인예복은?)
http://www.ofmkorea.org/35125
11년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아랑곳 않는 이들과 어울리지 않은 이들)
http://www.ofmkorea.org/5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