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자기가 진 짐이 무겁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얘기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데도 버겁다 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하소연하며 위안을 얻으려 하고
심지어는 자기의 짐을 덜어주고 대신 짐을 져 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대를 거는 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짐을 대신 져 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고 삐집니다.
제가 관구장을 할 때입니다.
관구의 여러 가지 큰 일로 제 일생 일대 가장 힘들 때였습니다.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고독한 고통의 순간을 지내고 있었지요.
그때 제가 볼 때 가장 한가한 형제가 정말 속 편하게
힘들어하는 자기에게 관심을 안 준다고 타박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지만
인간의 속살을 본 듯하여 오히려 시선을 하느님께 돌렸습니다.
당신께로 오라 하시는데 인간은 오라시는 분께는 가지 않고
감당할 수 없어하는 사람에게 기대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의 저도 어떤 때 참 힘들다 느껴집니다.
외국을 두 번 나갔다 온 여파로 아직도 일이 밀려 있는데다
크고 작은 일들이 참으로 잡다하게 많으니 피곤하기도 합니다.
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 깜짝 놀랄 정도로 제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쉬려 하지 않고
일을 쉬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일을 쉬는 것도 필요합니다.
특히 집착을 할 때는 일을 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역시 일을 쉬는 것도
하느님 안에서 쉬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일을 쉬는 것은 힘을 빼지 않는 것에 불과하지만
하느님 안에 쉬는 것은 힘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자기가 진 짐이 무겁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얘기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데도 버겁다 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하소연하며 위안을 얻으려 하고
심지어는 자기의 짐을 덜어주고 대신 짐을 져 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대를 거는 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짐을 대신 져 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고 삐집니다.
제가 관구장을 할 때입니다.
관구의 여러 가지 큰 일로 제 일생 일대 가장 힘들 때였습니다.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고독한 고통의 순간을 지내고 있었지요.
그때 제가 볼 때 가장 한가한 형제가 정말 속 편하게
힘들어하는 자기에게 관심을 안 준다고 타박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지만
인간의 속살을 본 듯하여 오히려 시선을 하느님께 돌렸습니다.
당신께로 오라 하시는데 인간은 오라시는 분께는 가지 않고
감당할 수 없어하는 사람에게 기대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의 저도 어떤 때 참 힘들다 느껴집니다.
외국을 두 번 나갔다 온 여파로 아직도 일이 밀려 있는데다
크고 작은 일들이 참으로 잡다하게 많으니 피곤하기도 합니다.
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 깜짝 놀랄 정도로 제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쉬려 하지 않고
일을 쉬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일을 쉬는 것도 필요합니다.
특히 집착을 할 때는 일을 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역시 일을 쉬는 것도
하느님 안에서 쉬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일을 쉬는 것은 힘을 빼지 않는 것에 불과하지만
하느님 안에 쉬는 것은 힘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바쁜 사람이
더 바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능력의 문제도 있겠지만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먼저 하게 되더군요.
이럴 때 일수록 자신이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라는 일의 의미를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컷 하고는 안 한만 못한 쓴맛을 경험했던 순간이 기억 나서지요.
일은 사람을 위한 일이 되어야 한다는
제 개인적인 생각에서이지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는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면서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