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던 대로 어제 새벽도 강론을 올리고,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읽고 묵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묵상을 시작하자마자 이런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진실한가?
나는 나 자신에게 성실한가?
나는 하느님 앞에 있는가?
오늘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데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이 내게도 오시는가?
이런 질문들이 터져나온 이유는
제가 그렇지 않다는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의구심이 무의식 안에 계속 있었는데
그것을 계속 눌러왔기 때문에 터져나온 것일 겁니다.
-나는 나 자신도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합리화를 위해 하는 시늉만 하는 것은 아닌지,
-잠시 하느님 앞에 있는 것으로 안심시킨 것은 아닌지.
이런 의구심들이 있었는데 이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싫어 눌러왔다가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에 대한 오늘 복음이
눌러왔던 이 의구심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의구심들 때문에 어제와 오늘 저는 유쾌할 수 없었고,
지금도 찜찜한 상태로 있습니다.
옛날 저는 다음과 같은 강의를 자주 했습니다.
蛇飮水 成毒, 牛飮水 成乳사음수성독 우음수성유
곧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을 이루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된다.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존재가 바뀌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뱀과 같은 내가 소와 같은 존재로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생명의 말씀인 복음을 들어도 남을 죽이는 독설로 나올 것이다.
그러니 존재적인 회개를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주로 강의를 했지요.
그런데 오늘은 남에게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한테,
속속들이 병든 몸을 고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음식 먹어도 소용 없고,
암을 제거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암을 더 키울 뿐이듯
육의 내가 영의 나로 존재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나는 육의 열매만 맺을 것이라는 과제를 주는 것으로 갈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강론을 끝날 때까지 각성覺醒과 각오覺悟와 결심은 못하고
과제만 받아들고 오늘 강론은 마쳐야겠습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다.^♡^
(나는 구원과 자비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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