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십팔 년을 병마에 시달린 여인을 고쳐주시며
안식일에 그리해서는 안 된다는 회당장을 아주 신랄하게 꾸짖으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주님 말씀처럼 이 얼마나 큰 위선입니까?
동물은 안식일이어도 먹이면서 인간에게는 어찌 사랑에 인색합니까?
그러니 실은 동물도 사랑하기 때문에 먹인 것이 아니라
죽으면 자기에게 큰 손실이기 때문에 먹인 것에 불과합니다.
사랑이 없을 때 인간은 크게 두 가지로 인간이나 사물을 대합니다.
하나는 이익과 손해의 관점에서 대하고,
다른 하나는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대합니다.
그러니 오늘 회당장이나 율법주의자들은 사랑이 없기에
동물에게는 이익의 관점에서 먹인 것이고,
인간에게는 율법의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안식일에 치유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얘기한 겁니다.
그리고 오늘 회당장에게서 볼 수 있듯이 사랑이 없으면
한 인간 안에서 고통을 보지 못합니다.
회당장이 병의 치유는 안식일이 아닌 날 해도 된다고,
안식일이 아닌 날이 엿새나 되고 그런 날이 더 많다고 하지만
더 많은 날이 있어도 고쳐 줄 마음이 그에게는 없었을 겁니다.
회당장은 엿새가 아니라 열여덟 해가 있어도 고쳐줄 마음이 없었을 텐데
그것은 그가 여인의 열여덟 해의 고통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열여덟 해를 앓는 고통도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님은 단 하루를 봐도,
아니, 한 순간에도 그 여인의 길고도 큰 고통을 보십니다.
사랑이 없으면 고통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순간에 보이는 죄스러운 단면만 보고 일생을 보지 못하는데
사랑이 있으면 그 순간의 죄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생의 고통을 봅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인간이 하느님의 귀한 자녀라는 것을,
그러니까 자신도 남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하시고
바오로 사도는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며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의 자녀요 상속자이며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이 아니라 사랑의 영의 인도를 받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서로 안에서 죄보다는 고통을 보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다.^♡^
('답게' 사는 삶)
http://www.ofmkorea.org/385095
18년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답게 산다는 것.)
http://www.ofmkorea.org/160898
17년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사랑에는 쉬는 날이 없어야 하기에)
http://www.ofmkorea.org/112998
15년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두려울 것 없는 아버지의 자녀들)
http://www.ofmkorea.org/83742
14년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사랑이란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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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사랑은 하루도 미루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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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안식일엔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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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잘못이 아니라 고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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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안식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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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사랑의 잔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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