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종이에서 구름을 본다고 합니다.
그것은 종이에 구름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인은 종이가 된 나무를 보고,
나무를 키운 비를 보고,
비를 보낸 구름을 보는 것입니다.
시인이 이러 하다면,
시인이 이렇게 현상 너머의 것들을 본다면,
시인보다 더 관상적이어야 할 우리는 이 가을,
가을의 충만을 가장 성대하게 축제지내는 이 한가위에
곡식의 낟알 하나에서 낟알 하나를 보지 않고,
나무에 달린 과실에서 과실 하나를 보지 않고,
그 하나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을 보고,
마침내는 모든 것이신 하느님을 봅니다.
한가위에 해당되는 서양의 명절이 Thanks giving Day입니다.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드리는 날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올해는 이 한가위에
감사를 드리기에 앞서 저는 저의 불효를 먼저 반성합니다.
저는 우리 형제들 중에 아주 효도를 잘 하는 형제들을 봅니다.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면 효도를 잘 하는 것이
무엇을 잘 해드리고,
무엇을 많이 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를 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형제들을 또 보면
감사를 드리는 것도 뭉뚱그려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생각지도 못하는 것까지 생각해내서는
그 하나하나를 낱낱이 헤아리며 감사를 드리고,
감사의 마음이 슬쩍 비치고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촉촉한 상태로 그 마음에 한 동안 머뭅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 가운데 머물 때
감사는 마음으로 그치지 않고
감사드리는 그분과의 벅찬 만남으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감사는 지난 일에 대한 회상적인 감사가 아니라
현재적인 사랑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대한 감사는 그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 나를 위한 것이고,
그러니 감사할 것이 많은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감사할 것이 진정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감사 인자, 감사 DNA가 없는 것이겠지요.
불만의 DNA가 감사의 DNA 대신 깊숙이 박혀 있어서
어느 것 하나 감사할 일은 없고
모든 것이 다 욕심에 미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어느 것에서도 모든 것이신 하느님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 하나에 하느님 현존이 달린 이유입니다.
하나를 감사하면 하나를 감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를 통해 모든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오고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데 비해
하나도 감사하는 것이 없으면
모든 것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그 어느 것 하나에서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감사의 DNA를 통해서 옆의 형제를 보면
그의 대소변을 내가 쳐 주게 되어도 감사해야 하는데
이렇게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만도 감사하고
죽지 않고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도 감사하고
힘들게 하여 나를 성장케 해 주는 것도 감사하고
실향민이나 새터민들을 보면
한가위 명절을 같이 기뻐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만도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 오늘과 내일
저는 새터민들과 함께 달도 보고
한가위를 지낼까 합니다.
그것은 종이에 구름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인은 종이가 된 나무를 보고,
나무를 키운 비를 보고,
비를 보낸 구름을 보는 것입니다.
시인이 이러 하다면,
시인이 이렇게 현상 너머의 것들을 본다면,
시인보다 더 관상적이어야 할 우리는 이 가을,
가을의 충만을 가장 성대하게 축제지내는 이 한가위에
곡식의 낟알 하나에서 낟알 하나를 보지 않고,
나무에 달린 과실에서 과실 하나를 보지 않고,
그 하나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을 보고,
마침내는 모든 것이신 하느님을 봅니다.
한가위에 해당되는 서양의 명절이 Thanks giving Day입니다.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드리는 날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올해는 이 한가위에
감사를 드리기에 앞서 저는 저의 불효를 먼저 반성합니다.
저는 우리 형제들 중에 아주 효도를 잘 하는 형제들을 봅니다.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면 효도를 잘 하는 것이
무엇을 잘 해드리고,
무엇을 많이 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를 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형제들을 또 보면
감사를 드리는 것도 뭉뚱그려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생각지도 못하는 것까지 생각해내서는
그 하나하나를 낱낱이 헤아리며 감사를 드리고,
감사의 마음이 슬쩍 비치고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촉촉한 상태로 그 마음에 한 동안 머뭅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 가운데 머물 때
감사는 마음으로 그치지 않고
감사드리는 그분과의 벅찬 만남으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감사는 지난 일에 대한 회상적인 감사가 아니라
현재적인 사랑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대한 감사는 그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 나를 위한 것이고,
그러니 감사할 것이 많은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감사할 것이 진정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감사 인자, 감사 DNA가 없는 것이겠지요.
불만의 DNA가 감사의 DNA 대신 깊숙이 박혀 있어서
어느 것 하나 감사할 일은 없고
모든 것이 다 욕심에 미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어느 것에서도 모든 것이신 하느님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 하나에 하느님 현존이 달린 이유입니다.
하나를 감사하면 하나를 감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를 통해 모든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오고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데 비해
하나도 감사하는 것이 없으면
모든 것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그 어느 것 하나에서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감사의 DNA를 통해서 옆의 형제를 보면
그의 대소변을 내가 쳐 주게 되어도 감사해야 하는데
이렇게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만도 감사하고
죽지 않고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도 감사하고
힘들게 하여 나를 성장케 해 주는 것도 감사하고
실향민이나 새터민들을 보면
한가위 명절을 같이 기뻐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만도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 오늘과 내일
저는 새터민들과 함께 달도 보고
한가위를 지낼까 합니다.
답글을 달려고 해도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 더 멋있겠다는 뭐 그런생각때문에 지나쳤습니다^^
나이가 드니 성당에서 자매들의 한마디에도 속으로 화를 내고 있는 저를 봤습니다
가끔 사는게 힘들때 들어와서 신부님의 글을 읽으면 감사함과 저의 교만을 깨닫습니다
평범한 저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여름날 시원한 찻믈같은 신부님의 글을 계속 보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고맙습니다 ^^
이곳은 다른 어느 날보다도 화창한 가을의 절정입니다.
복음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분들께 그래도 의미있는 한가위 되셨으면 해서 이렇게 인사 올립니다.
나눔 말씀 감동적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맑게개인 추석도, 구름낀 추석도 ,계절이 닦아왔음에
감사합니다 추석준비를 하면서 어수선한 세상살이가
마음 무겁게 하지만 내가 준비한 음식이 가족들에게
만찬으로 이어지니 이 또한 감사함입니다
더불어 축복처럼 닦아온 신부님 글 접하오니
이 감사함 큰 은총입니다
신부님! 평화 가득한 한가위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