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함의 예로
주님께서는 끈질기게 졸라대는 과부의 청원을 말씀하십니다.
아프리카인지 남태평양인지 어느 부족이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꼭 온다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부족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 합니다.
이렇게 끈질기고 끝까지 하면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데
사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끈질기고 끝까지 해야만 들어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건 일을 하건
자기가 생각하고 정해놓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 하고서는 할 만큼 했는데 안 되는 거보니
하느님께서 안 들어주신다고 생각하거나
제 풀에 기가 죽어서 안 되는 일이라고 포기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런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이렇게 조금 해보고 일찌감치 안 된다고 포기하는 그런 성마름과
그런 보잘것없는 갈망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그 힘든 상황을 견딜 수 있는 힘,
원하는 시간 안에 되지 않아도 조급하지 않는 느긋함,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아도 갈망을 꺾지 않는 꿋꿋함,
이런 것들을 키우라고 하느님께서는 일부러 기다리실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비유를 들으면서
관점을 조금 달리하여 생각해봤습니다.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청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께 끈질기게 매달리라는 말씀이라고 말입니다.
그게 그것 같지만 다릅니다.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청하는 것은
목적이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그것이지요.
이럴 경우 원하는 것 아닌 다른 더 좋을 것을 줘도 안 될 뿐 아니라
어제 치유를 받고도 감사치 않은 아홉 나환자들처럼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돌아서 가고
그것을 주신 하느님과는 빠이빠이(bye-bye)일 것입니다.
이는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은 태도지요.
어린 아이는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부모의 마음을 거부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에 집착하여 떼를 씁니다.
하도 떼를 써서 원하는 것을 주면 그때만 좋아라하고
부모는 안중에도 없기에 이런 아이에게 부모는
원하는 것을 누르면 즉시 나오는 자판기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오늘 과부의 비유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누구에게 매달리지 말고 하느님께 매달려라.
이 사람에게 얘기해서 안 되니 이 사람, 저 사람
아무에게나 매달리는 그런 사람처럼 되지 말고
오직 하느님께 끝까지 매달리는 사람이 되라.
끝까지 하느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