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중도 맹인이 다시 시력을 찾는 얘기입니다.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 지나가시는 주님을 만난 것을 보면
주님을 만날 것을 기대하지도 부러 찾아간 것도 아니지요.
그리고 주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다시 시력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요.
그러고 보니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주님이 없으면
시력을 되찾는 은총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맹인에게 은총은 그야말로 생각지도 않은 선물이요
꿈도 꾸지 않았는데도 주어진 선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은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의 그는 미적거리다 기회를 놓치거나
은총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없었던 사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잠자코 있으라는 사람들의 꾸지람에 간청을 그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이는 하느님 은총을 받게 될 때 우리가 갖춰야 할
양면적 태도 곧 수동성과 적극성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앞서 봤듯이 은총이란 뜻하지 않게 주어지는 선물이기에
은총을 받기 위해 놀부가 제비 다리 부러트리듯 해서는 안 되고,
흥부처럼 전혀 생각지도 않다가 주어지는 수동적인 것이어야 하지만
기도하지도 청하지도 않고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칼 라너라는 분은 기도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지요.
"기도는 성사보다 중요하다. 많은 영혼이 성사를 받지 않고도 구원되지만,
기도 없이 구원받은 영혼은 결코 없기 때문이며 하느님의 은총은
본래 사람의 공로로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은총이 우리 행동에 선행되어 무상으로 주어짐이 사실이라면,
그 은총이 제일 먼저 일으키는 반응이 마음의 움직임인데,
이 움직임을 가장 간단하고 정확하게 일컬어 ‘기도’라고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욕심이 일 때는 잠자코 있어야겠지만
은총이 주어질 때도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은총에 맞갖은 열망과 갈망이 마음 안에서 일어나야 하고,
받고 난 뒤에는 오늘 맹인처럼 감사와 찬양이 솓구쳐야 하며
입술로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맹인에게 베풀어진 자비는
단지 눈의 치유가 아니라 구원이었고,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보는 것이었는데
오늘 우리는 이런 맹인을 부러워하고 또 본받아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다.^♡^
(착각과 망각)
http://www.ofmkorea.org/388193
19년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치유도 받고 구원도 받은 사람)
http://www.ofmkorea.org/288388
18년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구걸 예찬)
http://www.ofmkorea.org/166142
17년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필요한 것밖에 못 보는 영적 맹인)
http://www.ofmkorea.org/114307
16년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다시 처음처럼)
http://www.ofmkorea.org/95275
15년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나도 하느님 자비를 못보는 영적 맹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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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개안 수술이 필요한 우리)
http://www.ofmkorea.org/72111
13년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사람이 일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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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구원이 이루어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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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탐욕의 눈과 영적인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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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지나가다와 지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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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진짜 불상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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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눈을 뜨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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