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카베오서의 엘아자르는 나이 많고 풍채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인격도 고매하고 신앙심도 대단한 존재입니다.
이에 비해 오늘 복음의 자캐오도 나이는 많을 것이지만
키가 작아서 풍채는 볼 품 없고 당시 멸시를 받던 세관장입니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은 나이 많은 것은 같지만 대조되는 인물들인 셈입니다.
그래서 늙은이들의 모범으로 두 사람을 한 번 다뤄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아자르는 그저 자존심 강한 늙은이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를 너무 얕이 보는 것이고 제대로 평가한다면
자기 인격을 하찮은 것에 파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찮은 것이라고 했지만, 그 하찮은 것이 자기 목숨이니
보통 사람들에게는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고 가장 소중한 것이고,
그러니 보통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하찮게 여기는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이요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렇긴 한데 저는 이 대단한 사람을 별로 닮고 싶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사람은 감히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그런 이유 때문일 수도 있지만
설사 그런 제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저는 닮고 싶지 않고
특히 오늘 복음의 자캐오와 비교하면 더더욱 닮고 싶지 않습니다.
우선 제게 엘아자르라는 존재는 사람같지 않을 정도로 너무 완벽하고,
그러니 너무도 완벽하지 않은 저와는 이미 너무 다른 존재입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인간미랄까 사람 냄내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율법 학자이기 때문인지
율법적인 옳음이 느껴지지 복음적이고 인격적인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오늘 복음의 자캐오는 저와 마찬가지로 흠결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은총으로 의화하는 사람이고,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성장해가고 그래서 늙어 성숙해지는 사람입니다.
율법적으로 옳은 사람이 아니라 그 반대이고,
그러나 사랑을 원하고 사랑으로 변화되는 사람이며
그래서 하느님 사랑으로 구원받는 사람의 대표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캐오는 작은 사람입니다.
키만 작은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더 성장하고 성숙해야 할 작은 사람입니다.
너무도 다행인 것은 그 나이에도 나무에 오를 정도로
주님을 뵙고자 하는 열망이 있고
주님 사랑에 가 닿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는 점입니다.
성장이 멈추고, 굳어지고, 화석화되며,
사랑이 시들해지는 것이 보통인 늙은 나이에도 나무에 오름으로
주님을 자기 집에 오시게 한 자캐오가 무척 부럽고 닮고 싶은 오늘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구원받아 행복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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