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사는 이는 모두 살아 있다.>
주님께서 오늘 말씀하시는 바,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이는 하느님께는 어둠도 어둡지 않고
밤 또한 낮과 같이 환히 밝다는 말씀과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빛이 아니고 빛이 없는 인간에게는
빛이신 하느님께서 아니 계시고 아니 비추시면 그것이 어둠이지만
빛이신 하느님께서는 어둠이라는 것이 아예 없으십니다.
악의 문제도 마찬가지이잖습니까?
악이란 게 인간이 악으로 느끼는 것일 뿐이지
선이신 하느님께는 악이란 도무지 그림자도 없고,
인간이 대단한 악이라고 느끼는 것조차,
그것은 선이신 하느님이 부재하시는 인간의 악일 뿐
지상선, 완전한 선, 충만한 선, 모든 선이신 하느님께는 우스운 것입니다.
하느님 부재의 어둠이고 하느님 부재의 악이란 얘깁니다.
생명도 정확히 마찬가지이지요.
스스로 생명이 없는 인간에게 죽음이 있고
그러기에 인간에게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있으며
살아 함께 있는 사람도 있고 죽어 떠나간 사람도 있지만
생명이시고 생명뿐이신 하느님께는 죽음도 없고 죽은 사람도 없습니다.
죽은 사람도 생명이신 주님이 아니 계시기에 죽은 것일 뿐이기에
생명의 주인이신 당신이 살리시면 그만일 뿐 아니라
하느님 안에만 있으면 죽음이 없고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앞에서 죽음을 운운하는 것이 이상하고,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을 구분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하느님 안에 있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살아있어도 죽은 것이고,
하느님 안에 있으면 이 세상에서 죽었어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이것을 얼마나 확고하게 믿습니까?
아직도 사두가이들처럼 하느님을 제외하고
언제까지 인간의 산 인연과 죽은 인연을 얘기하고 있겠습니까?
인간의 관계와 인연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느님 안에 있지 않으면 인간의 관계와 인연은
끈 떨어진 연처럼 근거 없고 허무하다는 거지요.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인간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인간관계의 새로운 희망을 가지자는 거지요.
어제는 어떤 분들의 배웅을 받았습니다.
한 분이 얘기를 하다가 자기 부부는
이제 더 이상 부부 사이가 아니고
남매 사이라고 농담을 하는 거였습니다.
농담이지만 제가 속으로 감탄을 하였습니다.
정확히 오늘 복음의 얘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살아가기로 다짐하고
하느님 안에서 살아있는 삶을 살기로 다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