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솔직히 저는 이 축일에 대해 거부감이 있습니다.
이 축일이 교회 승리주의의 한 파편이 아닌가 하는 점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해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교회가 점점 힘을 잃게 되자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교회 승리주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이 축일이 아닌가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승리하셨습니까?
짐으로써 이기셨습니다.
힘으로 이기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기셨습니다.
귄위로 이기신 것이 아니라 겸손으로 이기셨습니다.
기적으로 이기신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기셨습니다.
그러니 교회도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게 해야지 교회가 승리하면 안 됩니다.
만일 교회가 승리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세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한 그 세상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상을 이겼다 하심은
세상과 경쟁하여 이겼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과 세상의 가치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요즘같이 돈이 굉장한 힘을 발휘하는 때에
교회 안에서는 돈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요즘 교육의 목표이고 추세이며,
그래서 경쟁력을 숭상하는 때에
교회 안에서는 경쟁력이 무치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십자가를 경쟁적으로 높이 세우는 교회들을 볼 때,
동양 최대의 불상을 세웠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을 때
마음이 불편하고 늘 언짢아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 어느 성당에 갔는데 예수 성심상을
아주 크게 그리고 높이 세워놓은 것이었습니다.
너무 가려져있어 주위에 성당을 알리겠다는 것이었는데,
제게는 그것이 다른 종교와 경쟁을 하는 듯 보여 언짢았던 것입니다.
성당이 큰 것을 자랑삼고
신자수의 많음을 자랑하는 것은 다 세속적 승리주의이며
그러므로 반 그리스도적인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작은 형제회를 세우면서
이런 세속적 승리주의를 무척이나 경계하며 이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생애 말년 형제들이 너무 많이 입회를 하여
그는 작은 형제회가 너무 커지는 것에 대해 염려를 하였지요.
많은 사람이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질적으로는 부실하면서 양적으로만 커지는 것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자주 이렇게 애기합니다.
“저 같은 사람 만 명 있는 것보다 프란치스코 한 사람 있는 것이 낫다고.”
아무튼 우리가 이 축일을 지내는 진짜 이유는
다른 것이 우리의 임금이 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임금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되고자 함이니
세상의 가치에 굴복하지 말고
주님을 받들어 섬기기로 오늘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