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얘기합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것이 말이 됩니까?
예언이 성취되기 위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말입니까?
예언이 어긋나더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 안 좋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고,
오늘 복음의 말씀도 그런 뜻이어서는 안 되는데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예언이란 미래를 내다보는 말이긴 하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이고,
권력의 속성이란 자기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남을 죽이기에
권력 주변에서 이런 살상은 언제고 일어날 거라고 얘기하는 식이지요.
그래서 헤로데도 아기 예수가 미래 자기 권력에 위협 요소라고 생각하여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한 것이고, 죄 없는 아기들을 죽인 것이며,
복음은 그런 뜻에서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한 것이지요.
그런데 제 생각에 오늘 복음에서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말 안에는
더 중요한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참혹한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에 대해 신앙적으로 아무런 얘기 없이 지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아기 예수 때문에 애꿎은 아기들이 죽은 사건에 대해
그것을 어떻게 주님을 위한 순교라고 얘기하느냐고 생각이 되고,
그러니 이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하지 않고 건너뛰고 싶습니다.
그러나 복음이나 우리 전례는 이런 곤란한 문제에 대해
피하지 않고 성실히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고,
그리고 하느님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하느님과 무관한 일인 양 얘기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해 좋은 일도 예언하시고, 안 좋은 일도 예언하시며,
인간이 죄를 지을 것이라는 예언도 하시고,
그 죄를 씻으실 구세주가 오실 것이라는 예언도 하시며,
그 죄를 씻어 주시다가 오히려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도 하십니다.
죄 없는 아기들이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헤로데에게 죽임당한 예수님 당시의 아기들뿐 아니라
지금도 철없이 임신하고 비정하게 버리는 부모들 때문에 죽임당하는
아기들도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그 아기들이 죽음이
하느님마저도 무관심하고 아파하시지 않는 죽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 아이들이 죽었을 때 교회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도 얘기해야 하고,
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는 여성들에게도 피임이나 낙태 같은 문제는
어려운 문제이고 그래서 피하고 싶은 주제지만 얘기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 축일을 지내는 우리는
세상의 폭군들이 무고한 생명을 죽이고,
어미마저 제 젖먹이를 버려도,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 밖에 있지 않다고,
혹 어미는 버릴지라도 하느님은 버리지 않으신다고 예언해야겠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야 49, 15)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하느님의 무서운 침묵)
http://www.ofmkorea.org/394664
17년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벌이 아니라 동참이다.)
http://www.ofmkorea.org/115796
15년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오늘도 무죄한 이들의 순교는 계속된다)
http://www.ofmkorea.org/85488
12년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죄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죽다!)
http://www.ofmkorea.org/46783
11년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영원의 바다에 낙엽처럼)
http://www.ofmkorea.org/5451
09년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http://www.ofmkorea.org/3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