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오늘 요한의 편지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면서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거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자연스럽게 사랑을 하려면 다른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랑은 무엇이고,
그런 사랑이 가능하기는 할까라는 질문도 또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물론 다른 사랑을 할 수는 있겠지요.
그것도 사랑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좋아하는 사랑'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좋아하는 것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해야 할 것을
'나 너 좋아해'라고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좋아하는 것이 실은 사랑하는 것의 반대이지요.
사랑하는 것은 나를 내어주는 것인 데 반해
좋아하는 것은 상대를 소유하려고 하고,
좋은 것이 있을 경우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소유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줍니다.
이것을 제게 처음 깨닫게 해준 영화가 있습니다.
1970년 대 영화인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입니다.
방속국 디제이를 사랑하는 여자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곡을 신청하는데
그런 식으로 자기를 각인시키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합니다.
그러나 디제이가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사랑을 자기에게 돌리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자 죽이려 합니다.
내가 소유할 수 바에는 파괴하자는 겁니다.
이처럼 소유적 사랑은 사랑의 이름으로 소유하려고 하고 폭력적이게 되는데
요즘 흔하게 된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이 다 이 소유적 사랑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소유적 사랑과 데이트 폭력은 요즘 현상만이 아닙니다.
요즘 이것이 부각되었을 뿐 전에도 많이 있었던 것이고
하느님에게서 온 사랑이 아닌 인간적 사랑을 하면 이런 사랑을 하게 됩니다.
인간은 아무리 사랑을 한다고 해도 자기 중심성이 있기 때문인데,
사랑할수록 더 좋은 사람이기를 요구하고,
사랑할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바라고 요구까지 하는 것이 다 이 때문이지요.
그러나 진정 사랑한다면 내 입맛에 맞는 사람이기를 요구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기를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지금 받는 사랑도 과분하다고 하지 더 많은 사랑을 요구하지 않고
사랑하기에 사랑할 뿐 사랑해줄 것을 바라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뜻에서 저는 짝사랑 또는 외사랑을 참으로 아름답게 생각합니다.
인간의 사랑 중에서 꽤 괜찮은 사랑은 다 짝사랑 또는 외사랑입니다.
엄마의 자식 사랑은 다 짝사랑이고, 그것에 불만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인간 사랑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방적인 사랑이 대부분이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이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배우며 자라듯
신적인 사랑도 하느님 사랑을 받으며, 배우며 자라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사랑의 순서)
http://www.ofmkorea.org/395611
20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행복도幸福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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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주닝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거기에 더 얹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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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사랑할 때 알고 사랑하는만큼 아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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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되돌리는 사랑, 나누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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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가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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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사랑할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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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내리 사랑을 너무 탓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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