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2년 1월 5일 수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45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마르 6,45)
위험 속에서 배운 신앙
구원자께서는 제자들이 시혐의 배에 오르도록 재촉하시어 당신보다 먼저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는,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헤쳐 나오는 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그러나 호수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건너편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유혹의 풍랑과 맞바람 때문에 그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예수님 없이는 도무지 풍랑과 맞바람을 이겨 내고 건너편에 다다르지 못합니다.
말씀께서는 호수 건너편에 도달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호수 위를 걸어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때에는 어떤 풍랑도 맞바람도 일지 않았습니다.
-오리게네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말씀의 불꽃(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 관한 이야기 / 프랑스와 까생제나-트레베디
마음의 실힘실
홍미롭게도 이 동사는 거룩한 독서와 무관하지 않은 신약의 두 곳에서 사용된다. 요한 복음 5,39에서 “당신들은 성경을 탐색하고 있습니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또 베드로 전서 1. 11에서 베드로는 예언자들에 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예언자들) 안에서 미리 증언한 것이 무엇을 두고 혹은 어떠한 때를 가리켜 말한 것인지 탐색했던 것입니다. 사실 영은 그리스도께 닥칠 고난과 거기에 이어서 올 영광을 미리 증언했습니다" 아주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바로 같은 동사가 바울로의 말에서 다시 나타난다:
“바로 그것을 하느님께서는 영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영은 모든 것을 살피시고, 하느님의 깊이까지도 샅샅이 살피십니다”(1코린 2,10). 사실 질문을 던지고 탐색하는 이 기능 - 이것은 바로 거룩한 독서의 기능이거니와 - 은신적 위격 중 성령께 직접 관련되는 기능인 것이다. 미드라쉬화하는 주석학은 탐색자 영께서 직접 지휘하시는 주석학이다. 성령은 미드리쉬의 위대한 선구자이시다.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는 이분께서 우리를 문자의 표면으로부터 의미를 생산하는 생명수의 심원한 깊이로 인도핸다.(55)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1월 영적 수련 성월 1주간 회개/겸손☨
금주간 성서읽기 1.2.3요한 / 요한 1-4장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1부 고대 그리스도교
제 2기 : 312-60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부터 그레고리오 대교황까지
제 2절; 교의논쟁과 동방에서의 공의회들
서구의 신학 - 아우구스티노 및 의화논쟁과 은총논쟁
아우구스티노:
다른 관점에서, 그는 이후의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의 전 존재가 하느님과 영혼들에 대한 일로 둘러씨여 있었고, 그 활동에서 사랑만을 발산하던 사목자 아우구스티노는 사교도와 이단자에 대한 이후 교회의 진로를 여러 가지로 결정지었다. 그는 진리를 찾고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젊었을 때 직접 체험하였었다. 주교직을 맡게 되었을 때, 그는 모든 길 잃은 자들에 대하여 최대한 관용을 베풀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분열이라는 무서운 불행을 체험하였다. 북아프리카의 교회는 도나투스주의에 의하여 분열되어 있었다. 고유한 교계제도와 기능을 잘 발휘하는 조직을 갖춘 도나투스주의의 대립 교회는, ‘순결한 자’,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들의 교회라고 자처하였다. 또한 가톨릭 교회를 따르는 이들에 대하여, 특히 그 주교들에 대한 불신과 적의와 경멸을 유포시키고, 비열하고 악의적인 논쟁을 모든 본당에 침투시켰다. 아우구스티노의 경우에도 히포에는 도나투스주의의 대립 주교가 있었다. 이렇게 그는 교회분열이 모든 재앙 중에서 최악의 것임을 매일같이 체험하였으나 그것을 제거히는 데는 무력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이 이단을 호의적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서신으로, 또한 직접 도나투스주의 교직자들과의 대화를 모색하였다. 또한 그는 토의하고, 또 저술을 통하여 도나투스주의자들과 대결하려고 하였으나 상대방은 거부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하지만 대결의 제일선은 오래전부터 경화되어 있었다. 성도요 신앙의 투사이며 그리스도의 군사로 자칭하며 치르쿰첼리온주의라고 불리던 도나투스주의 중에서 종교적으로 과격한 광신자들은, 동냥꾼 또는 무장한 불량배로 때를 지어 지방을 두루 다녔다. 그들은 폭력과 테러도 꺼리지 않았고, 시민생활에서는 사회 입법 - 노예제도의 폐지와 빈민구제 등 - 을, 교회 영역에서는 도나투스주의적인 의미의 엄격한 개혁을 요구하였다. 어느 곳에서나 그들은 도나투스주의의 전파를 위하여 투쟁하였다. 가톨릭 교회의 파괴, 성직자와 신자들에 대한 학대가 비일비재하였다. 국가권력은 거의 1세기 동안 이 광신자들에 대하여 무력하였다. 반달족의 지배가 비로소 이 운동을 끝내게 하였다. 아우구스티노도 도냐투스파 주교들에 의하여 선동된 이 광신에 대해서는 이성과 사랑의 말이 통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411년 카르타고에서 개최하고 주재한 종교 대화에 참석한 286명의 가톨릭 주교들은, 279명의 도나투스주의자들과 대치하였다. 최대한의 양보도 우이독경에 그쳤다. 그리스도 교회의 일치와 평화라는 최고선을 위하여 아우구스티노와 그밖의 주교들은, 만일 도나투스주의자들이 신앙 공동체로 돌아온다면 자신들의 직무에서 사퇴하겠다는 제의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관용은 조소 섞인 거부와 새로운 폭력의 위협을 받았다. 그리고 가톨릭측은 가톨릭과의 씨움에서 패배하는 것을 순교로 간주히는 종교적 광신자들이 만일 새로운 폭력으로 격려를 받을 경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너무나 잘 깨달았을 뿐이었다.(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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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한국관구
에페소 기도의 집
☨에페소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난민을 위한 기도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