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까지만 해도 사울은 다윗을 사랑했고 그래서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려고 나가는 것을 말립니다.
사울의 말대로 다윗은 아직 소년이었고 그래서 경쟁자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가 다윗을 경쟁 상대로 보고 그래서 미움이 생기는 것은 내일 독서이기에
오늘은 사울 탐구를 잠시 멈추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대해서만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까짓것'의 영성 차원에서만 봤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어리석은 사람은 사울처럼 그것을 너무
큰 일로 여기기에 해결치 못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다윗처럼 "까짓것'
할 수 있기에 해결하는데 다윗이 '까짓것'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하느님의 눈으로 골리앗을 보고 하느님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른 차원에서 이 얘기를 교훈 삼고자 합니다.
다윗에게서 싸우는 법을 배우자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무거운 짐을 고생스럽게 지는 사람에게
편하고 가볍게 지는 법을 가르치시면서
당신의 멍에를 메고 지면 멍에는 편하고 짐은 가볍다고 하셨지요.
그러면서 당신의 멍에는 마음의 온유와 겸손이라고 하셨고요.
왜 내게 무거운 짐이! 또는 왜 내게 이 고통이! 또는 왜 나한테만!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고 그것도 거칠게 따지기 시작하면
짐은 더 무거워지고, 그 이전에 그 짐과 고통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처럼 싸우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제 생각에 그것은 겁 없이 그리고 칼 없이 싸우는 겁니다.
오늘 사무엘기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다윗은 손에 칼도 들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이다."
그런데 겁과 칼이 없이 싸우는 것이란 단순히 겁과 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칼이 없어도 문제 없다는 자신이 있는 것이고,
자신이 있는 것은 자기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으면 된다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 겁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 없이 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우리에게도 각기 싸워야 할 골리앗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유혹과 욕망일 수도 있고,
불의한 세력일 수도 있고,
두려움이나 병마일 수도 있고,
요즘 우리 모두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는 코로나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거시 무엇이든 우리도 다윗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두 가지 상반된 감정)
http://www.ofmkorea.org/397344
20년 연중 제2주간 수요일
(골리앗보다 크신 하느님)
http://www.ofmkorea.org/310517
18년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수 억이 나를 미워해도)
http://www.ofmkorea.org/116600
17년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사랑을 볼 수 있는 겸손의 눈)
http://www.ofmkorea.org/97823
16년 연중 제2주간 수요일
(다윗의 치료법)
http://www.ofmkorea.org/86220
15년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주님의 복합적인 감정)
http://www.ofmkorea.org/74170
14년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주님의 분노와 우리 분노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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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돋우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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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연중 제2주간 수요일
(남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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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정의와 평화의 임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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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연중 제2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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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사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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