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환영을 받고 싶지,
미움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평가가 과분할지라도
자신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것을 원하지,
야박하게 평가받고 싶지 않습니다.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무리없이 무난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사회적 목표가 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미움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문제점은
평가의 기준이 내가 아니라는 것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괜찮다고 이야기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더 큰 어려움은,
나를 판단하는 그의 기준이
시시각각 바뀐다는 것이고,
나를 판단하는 그는 한 두 명이 아니라
그 기준도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누구는 좋게 보지만 누구는 좋지 않게 봅니다.
여기에서 어느 기준을 따를지 선택하게 되는데,
그 기준은 다분히 힘의 논리에 따라가게 됩니다.
나에게 영향력이 큰 사람의 기준이
나의 기준이 됩니다.
내 삶에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은 누구인가요?
부모님, 가족, 배우자, 직장 상사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하느님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공기나 물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단 1분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무시했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당장
공기와 물을 거두어 가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다보니 내 삶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사람의 눈치를 맞추다보니
피곤합니다.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어려운 상황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이야기했습니다.
일부러 미움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지만
살아가면서 내 의도와 상관없이
미운 털이 박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내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을 배려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선택을 해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미움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살아가기를 거부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만큼 우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 한계, 그 가난함이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미움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평가가 과분할지라도
자신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것을 원하지,
야박하게 평가받고 싶지 않습니다.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무리없이 무난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사회적 목표가 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미움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문제점은
평가의 기준이 내가 아니라는 것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괜찮다고 이야기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더 큰 어려움은,
나를 판단하는 그의 기준이
시시각각 바뀐다는 것이고,
나를 판단하는 그는 한 두 명이 아니라
그 기준도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누구는 좋게 보지만 누구는 좋지 않게 봅니다.
여기에서 어느 기준을 따를지 선택하게 되는데,
그 기준은 다분히 힘의 논리에 따라가게 됩니다.
나에게 영향력이 큰 사람의 기준이
나의 기준이 됩니다.
내 삶에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은 누구인가요?
부모님, 가족, 배우자, 직장 상사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하느님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공기나 물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단 1분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무시했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당장
공기와 물을 거두어 가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다보니 내 삶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사람의 눈치를 맞추다보니
피곤합니다.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어려운 상황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이야기했습니다.
일부러 미움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지만
살아가면서 내 의도와 상관없이
미운 털이 박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내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을 배려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선택을 해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미움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살아가기를 거부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만큼 우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 한계, 그 가난함이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