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다음 금요일-2019
“저희는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교회는 회개의 사순절에 실천해야 할 것으로 단식, 자선, 기도
이 세 가지를 권면하는데 그것은 그제 읽은 복음말씀대로입니다.
사실 회개한 사람과 성인들은 예외 없이 이 세 가지를 잘한 사람들이기에
우리도 회개하여 성인이 되려면 이 세 가지 실천을 잘해야 하는데
이 세 가지 중 오늘은 단식에 집중하여 교회는 가르침을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들이 자기들은 단식을 많이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단식을 아무리 많이 하였어도 어떻게 많이 했다고 주님 앞에서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단식을 많이 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이 중요한 거야!’라고 흔히 얘기하듯
단식도 많이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환갑이 되던 해에 서품 30주년이 겹쳐 자연스럽게
제 인생과 수도 생활을 함께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때 든 생각이
제가 60년을 그리고 사제생활 30년을 참 열심히 살았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열심히는 살았는데 잘 산 것은 아니었다는 반성이 되었고,
그래서 이제부터는 ‘열심히’가 아니라 ‘잘’이어야 한다고 마음먹었지요.
단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이 중요하고
그래서 오늘 이사야서도 그런 조로 얘기합니다.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요,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요,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 사랑을 거스르지요.
내 배 부르기 위해 남의 입의 것 빼앗고,
높이 오르기 위해 남을 짓밟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잘하는 단식의 기준은 사랑입니다.
음식을 끊는 것보다 욕망을 끊는 것이요,
욕망을 끊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겁니다.
내 입에 넣기 위해 남의 것 빼앗던 우리가
내 입에 들어갈 것으로 자선을 실천한다면 이것이 진정한 단식인데
그러나 오늘 주님은 여기서도 한 단계 올라서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신랑을 위한 친구의 단식을 가장 완전한 단식의 예로 제시하십니다.
진정한 친구는 친구가 먼저고 음식은 늘 2차적인 겁니다.
사람보다 먹는 것이 중요한 식도락가는 맛에 탐닉하지만
사랑이 중요한 사람은 맛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요즘 와서 저의 최고의 식탁은 맛집에 가서 먹는 것이 아니라
제가 정성껏 준비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와 맛있게 먹어주는 식탁이고,
그래서 협동조합을 시작하고 센터가 마련되면 이런 식탁을 마련할 것입니다.
한 주일에 한 번 열두 분의 조합원을 번갈아 초대하여 미사를 봉헌한 후
제가 준비한 식탁에서 주님과 제자들처럼 사랑의 나눔을 하는 겁니다.
음식은 내 배를 채우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라고 있는 것이니
사랑을 배운 우리는 누구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기쁘게 축하하며 먹고,
안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는 넘어가지 않아서 먹지 않습니다.
세월호 단식투쟁을 할 때 옆에서 폭식한 사람들처럼 그래서도 문제지만
좋은 일에 같이 기뻐해주기를 바라는 사람 앞에서 단식하는 것도 문제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과의 식탁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어쩌시겠습니까? 단식하시겠습니까? 주님과 함께 식사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