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님께서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신
오늘 축일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삼종기도의 첫 구절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마리께 아뢰니, 성령으로 잉태하셨도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는 성령의 정배이자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당시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클라라와 자매들에게 성령의 정배들이라고 합니다.
오늘 축일의 마리아처럼 성령의 정배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런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받은 클라라는 그래서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에게 다음과 같이 애기합니다.
"그대는 하늘도 담을 수 없는 그런 아드님을 낳으신
그분의 지극히 감미로우신 어머니께 매달리십시오.
동정녀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태중인 작은 봉쇄 안에
그분을 모셨고, 처녀의 품으로 안으셨습니다.“
여기서 아주 특이한 표현이 바로 '거룩한 태중인 작은 봉쇄'인데
다른 봉쇄 수도자들과 달리 봉쇄가 몸의 밖에 있지 않고
동정녀의 거룩한 태 안에 있는 것이고
이로써 동정녀 마리아가 어머니 마리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축일을 지내는 것이 그저 마리아를 칭송하기 위함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거룩한 태를 지닌 어머니 마리아가 되기 위함이라면
우리도 오늘 마리아처럼 주님을 우리의 태 안에 모셔들여야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태가 이미 정결하고 거룩하기에 주님을 모셔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모심으로써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클라라는 또 이렇게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에게 권고합니다.
"그분을 사랑할 때 그대는 정결하고,
그분을 만질 때 그대는 더욱 깨끗해지며,
그분을 맞아들일 때 그대는 동정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요르단강이 깨끗하기에 주님께서 그 물에 들어가 세례받으신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요르단강 물에 들어가심으로 그 물이 깨끗해지고
그 물이 세례의 물이 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더럽다고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러우니 들어오셔서 깨끗하게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하늘에 고고하게 계시지 않고 죄 많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 축일을 지내는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몸 안에도 들어오시겠다고 하실 때 빼지 말고,
오늘 마리아처럼 용기를 내어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