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2년 4월 1일 금요일
1교부들의 말씀 묵상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요한 7,25)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복음사가는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가장 놀라운 기적들이 거기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곳의 주민들은 가장 한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 신성의 가장 뚜렷한 증거들을 보고서도 자기 생각은 제쳐 두고 타락한 지도자들의 견해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죽이려고 날뛰다 막상 그분이 자기들 수중에 들어오자 그들이 갑자기 잠잠해진 것이야 말로 가장 놀라운 기적 아닙니까?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1성인 / 영적 글 묵상
말씀의 불꽃(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 관한 이야기 / 프랑스와 까생제나-트레베디
대성당을 위한 돌 하나
날이면 날마다 항구한 미드라쉬를 수행하는 그대의 독방 안에서 텍스트를 그대 삶의 흐름 안으로 육화시키는 인내롭고도 묵묵한 이 작업윷 수행하는 그대의 내밀한 독방에서 그대는 혼자가 아니다. 고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몇 가지 대목에 관해서 주석학적 연쇄/사슬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예컨대 시편 119에 대한 팔레스티나 사슐은 오리게네스와 아타나시오. 그리고 디디모스와 에우세비오 등이 각 구절에 붙여놓은 주해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가 성경을 읽고 있고 그대 지신의 주석을 작성하고 있을 적에, 그대 역시 주석학의 거대하고 살아 있는 사슬의 한 고리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는가?(105)
1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3월 영적 수련 성월 4주간 성화/일치
금주간 성서읽기 마태 27-28장 / 사도 1장
1금요일 성인의 날
영적 삶의 샘(디다케에서 아우구스티노까지), 요한 봐이스마이어 외 지음
리옹의이레네오
이단자들을 거슬러
아들이 인간이 되심-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우정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 처음부터 하느님 곁에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증명했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해서 만들어졌고, 말씀은 언제나 사람들 곁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리고 아버지께서 정하신 시간에 따라 말씀은 어느 한 피조물과 결합했다. 그래서 말씀은 고통을 견디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한 인간이 되었다. 이 사실로 그리스도는 이 시간 속에 태어났으므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가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우리는 그분이 당시에는 단지 하느님의 아들로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을 뿐이란 사실을 앞에서 보여주었다. 그분은 처음부터 언제나 아버지 곁에 계셨다. 그분은 인간이 되어 오시는 작업에서 당신의 인격 안에 인류의 오랜 발전의 과정을 통합하셨다. 그분은 이러한 통합 안에서 우리들에게 구원울 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참된 존재에 도달해야 한다. 불순종으로 타락하고 몰릭해 버린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자신을 다시 일으킬 수 없고 승리의 월계관을 성취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 많은 인간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구원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둘을 아들이 해낸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분은 아버지로부터 내려와서 육체를 취하시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걸어가셨다. 그렇게 히여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이룩하셨다. 사도 바오로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의 마음속으로 ‘누가 하늘로 올라갈 것인가?’ 하고 밀하지 말라"
-사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자는 것입니다 - “혹은 ‘누가 깊은 구렁 속으로 내려갈 것인가?’ 하고 말하지도 말라" - 사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모셔 올리자는 것입니다(로마 10,6 이하참조).(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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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한국관구
에페소 기도의 집
☨에페소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난민을 위한 기도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