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죄 지은 여자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서 구해주시며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것의 뜻을 우리는 오늘 생각게 됩니다.
가라는 것은 늘 어딘가 목적지를 품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여인에게 가라는 곳은 어디입니까?
여인이 살던 집입니까?
집으로 돌아가라는 뜻도 될 수 있겠지만 오늘 독서의 말씀들을 보면
집이라기보다는 앞을 향하여 또는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가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사야서와 필리비서 모두 이렇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는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기도 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저 산다고 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는 우리 말처럼
우리는 모두 예외없이 살며 어디론가 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외없이 모두 살며 어디론가 가는데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알고 사는 사람과 모르고 사는 사람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는 마치 배를 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배 위에서 매일 먹고 자고 일하며 사는데
먹는 동안에도 가고, 자는 동안에도 가며, 일하는 동안에도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딘가로 가는데
뒤 곧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앞 곧 미래를 향해 가라는 것이
오늘 사순 제5주일의 가르침이고 그 과거가 죄스런 과거라면
더더욱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는 말은
단지 과거의 죄를 끝내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사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끝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움을 끝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의 삶을 끝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은총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바꿔 얘기하면
끝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미움을 끝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죄의 삶을 끝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총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죽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죄지은 여인을 죽이는 것으로 끝장내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그녀를 죽이면 죄의 행위도 끝장나기는 합니다.
살인마를 죽이면 살인마의 계속되는 살인도 끝납니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 죄인을 죽이는 것으로 죄를 끝장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맹세하노니, 죄인이 죽기를 바라지 않고
오직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노라."는 성무일도 육시경 말씀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살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고 오늘 선언하시는데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 무디게 가지지 말라."는
시편 말씀처럼 우리는 사는 새로운 길에 동참하는 것으로 오늘 응답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