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오늘 독서의 이 말씀은 야훼의 종 곧 우리 주님께 대한 말씀이지만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는 말씀에 제 마음이 철렁하고 출렁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나의 종이 없다는 말씀으로 바뀌어 들렸기 때문입니다.
너의 수도원에는 나의 종이 없다.
너의 공동체에는 나의 종이 없다.
너의 성당에는 나의 종이 없다.
너의 집안에는 나의 종이 없다.
이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오늘 독서의 주님의 종과 같은 주님의 종은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주님의 종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과 같은 참 종은 아닐지라도 종이 아니라고 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엉터리 종일지라도 참 종을 보며 따르려는 지향만 버리지 않으면 됩니다.
지지난주 제가 영적 보조를 맡고 있는 형제회의 입회와 서약 대상자를 위한
피정이 있었고 종신 서약 대상자들과는 면담도 했는데 대상자들 모두
프란치스코와 비교하면 너무 차이가 나 종신 서약을 해도 되는지 주저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늘 얘기하고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낫다고 얘기합니다.
즉 나는 서약을 하기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성찰치 않는 사람이요 교만한 사람이니 그것보다 낫다는 거지요.
그렇지만 나같은 사람은 프란치스코를 따를 자격이 없다고 하며
포기한다면 그것도 겸손이 아니고 교만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와 같은 사람은 프란치스코 한 사람 뿐이고
수백의 프란치스칸 성인들조차도 프란치스코와 비교하면 많이 멀었지요.
그러므로 겸손한 추종자라면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뒤따라가기로 마음먹고 조금씩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사실 마귀가 노리는 것이 있다면
<자기 실망>과 <자기 포기>일 것입니다.
자기에 대해 실망케 하고 주님의 종이기를 포기케 하는 것 말입니다.
실망失望이란 말 그대로 희망希望을 잃는 것이요 포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여전히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포기치 말고 종의 길을 가라고 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