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의 사도행전은 어제 베드로의 기도로 앉은뱅이가 치유된 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몰려오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면서 당신들이 죽인 예수께 대한 믿음의 힘이
이를 낫게 했다고 얘기하면서 베드로는 이런 표현을 씁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
그러니까 믿음은 누군가가 주는 것이고
주는 것을 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을 때 믿는 것은 우리가 믿는 거지만
우리는 사람에 따라, 믿기도 하고 믿지 못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어떤 사람은 믿음을 주고, 어떤 사람은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간다는 표현도 쓰는데
어떤 사람에게 믿음이 가고, 어떤 사람에게는 안 가냐 하면
믿음을 주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안 갑니다.
아무튼, 우리는 주는 믿음을 잘 받아 잘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잘 믿지 않는 것이 쉽게 속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미덕인지 모르지만
의처증처럼 중증은 아닐지라도 심각한 문제이고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잘 믿지 않는 것은 불신을 당하는 사람에게도 해가 되지만
누구보다 자신에게 손해이니 말입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고
아무하고도 소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잘 믿는 것은 하느님을 잘 믿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인간 사기꾼은 잘 믿으면서 정작 믿어야 할 주님은 잘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인간 사기꾼이 주님보다 더 믿음을 주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그가 믿음을 주는 것은 내가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그가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고,
그가 믿음을 줘서가 아니라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믿음은 이런 헛믿음을 거친 다음에 옵니다.
사도들이 좋은 예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사도들은 죽임당하실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왕이 되실 것이고 자기들은
한 자리 차지하게 될 거라고 자기들 믿고 싶은 대로 믿었지요.
그렇게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가 그 믿음이 헛된 믿음임을 안 뒤
비로소 믿어야 할 것을 믿게 된 것이고,
믿어야 할 분을 믿게 된 것입니다.
곧 주님을 믿게 된 것이요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것만 있고 나쁜 것은 없다는 놈은 믿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은 없고 즐거움만 있다는 놈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은 이 세상에 없고, 영원한 것에서는 더 없습니다.
그러니 고통과 수난을 통해서만 구원이 온다는 말을 믿어야 하고,
수난을 무릅쓰는 사랑을 주시는 주님만 우리는 믿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