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으로서 다른 것도 그렇지만
부활 사건도 다른 복음과 비교할 때 가장 짧고 단순하게 전해 줍니다.
그래서 이 짧은 복음의 내용은 단 두 가지입니다.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는 것과 그런데도 복음 선포의 사명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두 번이나 얘기 들었지만
모두 믿지 않았고 그래서 이번에는 주님께서 친히 사도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불신과 완고함을 꾸짖으신 다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여기서 우리는 생각게 됩니다.
그렇게 믿지 못하고 완고한 사도들에게 주님께서는
어찌 복음 선포의 사명을 맡기시는지.
이런 사도들에게 막중한 복음 선포의 사명을 맡겨도 될는지.
게다가 사도들은 특출난 사람도 아닙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베드로와 요한에 대한 당대 지도자들의 평과 반응을 전합니다.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그렇습니다.
유식하고 특출한 사람이 사도가 되고 복음 선포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선포자로 부르실 때 그 부르심을 받아들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복음 선포자로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복음 선포자가 되지 않을 것이고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신자 중에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개신교 신자는 부르심 받고 천주교 신자는 안 받았을까요?
그리고 나는 그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람이면 좋겠습니까?
너는 무식하고 평범하니 방 구들이나 지키고 있으라 하면 좋겠습니까?
너는 무식하니 빠지라고 하면 매우 서운하고 자존심이 상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생각하고 그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복음 선포자가 될 터인데 그러나 사도들처럼 꼭 세상 끝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여기가 중요하고 여기부터가 중요합니다.
멀리까지 생각하면 할 수 없고 엄두도 나지 않지만
가까이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나부터 복음화하고 내 가정부터 복음화하면 됩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유교에서 말하는 수신제가修身齊家입니다.
사실 복음은 머리와 능력으로 선포되는 것이 아니고,
복음 그 자체로 선포되는 것인데 이 말은, 복음은 그 자체로 힘이 있기에
우리가 복음을 지니고 있기만 하면 그 복음이 스스로 선포하는 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복음은 머리와 능력으로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이런 힘을 믿는 믿음과 사랑으로 선포되는 것입니다.
나는 코란을 통해 하느님을 믿거나 율법을 통해 하느님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하느님을 믿어서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이
복음에서 가르치는 사랑으로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하는 것,
이것이 자기를 복음화하고 세상을 복음화하는 복음 선포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복음으로 행복한 사람,
복음 선포가 의식화된 사람,
복음 선포의 열정이 있는 사람, 곧
복음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이 여기서건 저기서건
그리고 저 멀리 땅끝까지 가서건 선포하는 것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