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가 성경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사도행전 12장입니다.
이때 교회는 헤로데에 의해 곤경에 처하게 되었는데
요한의 형 야고보가 순교하고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교회는 이런 곤경의 때에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베드로는 이 기도의 힘으로 천사의 도움을 받아 쇠사슬을 끊고
감옥문을 열고 감옥을 탈출케 되는데 이때 천사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곳이 바로 마르코의 집입니다.
"베드로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그러니까 마르코는 박해 시대를 산 신앙인 집안 출신의 젊은이였으며
베드로와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베드로는 이런 마르코를 오늘
"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바빌론 교회와 나의 아들 마르코"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니 마르코가 선택되었다는 것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복음을 선포하도록 선택된 것임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 베드로가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편지에서 얘기하듯
복음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고난을 겪도록 선택된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되었다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닙니까?
안 좋은 경우에는 선택되었다고 하지 않고
연루되었다거나 걸려들었다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고난을 겪도록 선택되었다는 것은 분명 좋은 뜻이고
마르코는 고통스러운 일에 걸려들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에 자신이 기꺼이 응답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제겐 마치 전장에 핀 꽃처럼 보이는데
그렇습니다.
복음도 그렇고 복음을 선포하는 마르코를 포함하여
박해 시대의 모든 복음 선포자는 전장에 핀 꽃입니다.
전장에 핀 꽃이란 언땅을 뚫고 나온 꽃과 같고,
살육의 현장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꽃이며
그래서 더 아름답고 그래서 더 강한 꽃인 것처럼
고난 중의 복음과 그 선포자는 더 아름답고
고통을 불사르며 타오르는 강인한 사랑이요 생명입니다.
이 전장의 꽃들인 베드로와 마르코와 복음 선포자들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이렇게 격려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이 잠시 고난을 겪고 나면,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분께서 몸소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며 든든하게 하시고 굳건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