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거처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현재의 거처가 아니라 미래의 거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오늘은 나의 거처, 곧 내 머물 곳이 어딘지 생각해볼 것입니다.
진정 내 머물 곳은 어디입니까? 어디여야 하고 죽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미래 거처는 죽기 전의 거처가 아니라 죽고 난 뒤의 거처인데
옛날 우리 조상들은 골로 간다고도 하고, 혼비백산한다고도 하였지요.
골로 간다는 말은 그리 좋은 뜻이 아니지요.
골로 간다는 말의 유래와 관련하여 여러 설이 있지만
골이 관의 옛말이라는 설이 맞다면 우리의 미래 거처가 관이라는 것이니 말입니다.
혼비백산도 죽으면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진다는 뜻이니
우리의 미래 거처가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고
혼비백산하기 전까지 100년은 묘지가 우리의 거처가 되고
그 이후에는 거처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가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가 하면 죽고 난 뒤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돈다는 말도 있는데
그러니까 죽고 난 뒤 우리 조상들의 미래 거처는 그 어떤 것이건
하나같이 있을 곳이 없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이는 예수님 이전의 구약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사두가이파는 부활을 믿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죽으면 명부 곧 Hades에 간다고 믿었지요.
그러니 주님께서 오늘 아버지의 집에 거처가 많고,
제자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의 집에 가신다는 말을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머물 곳으로 아버지의 집을 제시하시며
그 자리를 준비하러 먼저 가신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하시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얼마나 고마운 말씀입니까?
골로 가거나 혼비백산하거나 구천을 떠도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두말할 것 없이
아버지 집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할 터인데
지금 즉시 주님을 따라 아버지 집으로 가자고 하시면 어떨까요?
좋을까요? 기쁠까요? 망설여질까요?
좋거나 기쁘지 않다면 아버지 계신 곳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마 지금 있는 이곳이 더 좋고 그래서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고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것일 겁니다.
부자 청년이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자
시무룩하여 떠난 것과 같은 것일 겁니다.
지금은 이럴지라도 우리 신앙이 깊어지고 하느님 사랑이 커져
언젠가는 진정한 부활을 우리가 희망하며 살아야 할 것이고,
위령 미사 감사송처럼 영원한 거처에 대한 찬미가를 읊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주님,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그러므로 천사들과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