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은 둘 다 이별할 때 주님과 바오로 사도가
어떻게 하셨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러니 이별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을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지난번 동포 미사 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남긴 말씀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유언을 남긴다면 어떤 말씀을 남기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유언을 준비한 분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준비된 유언은 없어도 이제라도 말씀해보시라고 하니
모두 하나같이 하느님을 열심히 믿으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찾아야 할 것은 하느님이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대면해야 할 분도 하느님이며
그러니 마지막으로 남겨야 할 말도 하느님을 열심히 믿으라는 말씀이어야겠지요.
얼마 전 저희 수도원에서 유언장을 모두 작성하라는 공문이 왔습니다.
갑작스럽게 죽을 경우를 대비하여 작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시신이나 장기를 기증했거나 기증할 것인지,
연명 치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밖에 연락할 곳이나 여러 사안에 대한 입장을 남기라고 한 다음
마지막으로 형제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남기라고 하였는데
저는 남길 말이 하나도 없었고 아무 흔적 없이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을 확인한 뒤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에게 아무 말을 남기지 않으려는 저의 마음이
가난이나 겸손인지, 아니면 사랑 없음인지.
제가 뭐 대단하다고 형제들에게 유언을 남긴다는 말인가?
이렇게 유언을 할 만한 자격이 없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 세상에는 미련이나 애착은 말할 것도 없고 진정 털끝만큼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이것이 진정 저의 가난과 작음인 것인지,
형제들에 대한 저의 사랑의 부족이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았는데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저에게는 두 가지가 다 있었습니다.
변명할 여지 없이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저에게 없었고,
형제들이 저의 유언을 소중히 여길 거라는 믿음도 없었던 거였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저는 적지 아니 충격을 받았고 부끄러웠습니다.
물론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제게 없을 리 없고
형제들의 사랑에 대한 믿음도 없을 리 없지만 그리 크지 않은 거지요.
다시 지난 동포 미사 때 동포들이 말씀하신 것과 비교하면 이것은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남긴 유언을 자녀들이 소중히 여길 거라고 믿느냐고
제가 질문을 던졌을 때 그분들은 모두 자신 있게 그럴 거라고 믿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자식 가진 부모들도 같을 겁니다.
저도 몇 명의 형제들과의 관계에서는 사랑과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형제와는 이런 사랑과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갓 들어온 형제가 그래서 저와 같이 살아본 적이 없는 형제가
저의 유언을 귀담아들을 것이라고 저는 믿지도 바라지도 않는 것인데
한 사람의 작은 사람으로 숨어 살 수 있는 큰 공동체 생활의 한 단면,
그러니까 익명성의 한 단면입니다.
그렇습니다.
영향력 있는 세계 지도자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77억 인구 중에 지구 한구석에서 죽은 한 명의 죽음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이것을 존재의 익명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큰 공동체에서도 이럴 수 있는 거지요.
존재의 익명성에 기대어 살다가
사랑도 믿음도 익명성에 숨어버리는 나의 인생이 아닐지,
끝까지 그런 인생을 살다가 끝내는 것은 아닐지 심각하게 돌아보는 오늘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