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오늘 독서의 엘리야는 동굴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동굴에 있습니까?
그것은 동굴에 숨은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다시 왜 동굴에 숨었습니까?
두려움 때문에 숨은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다시 무엇이 왜 두렵습니까?
엘리야와 관련하여 이런 질문이 계속되는 오늘인데
자기를 죽이려는 이제벨이 두려워 숨은 것이지만
실은 이제벨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있지 않아서 두려운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있지 않으면 이제벨 뿐 아니라 개도 두렵고 개똥이도 두렵습니다.
왜냐면 두려움은 사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고,
내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되면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 두 가지 있는데
최악을 각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 하나라면
하느님 앞에 있는 것이 다른 하나이고 이것이 더 완전합니다.
최악을 각오한다는 것은 뒤집으면 선을 하나도 기대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내 문 앞까지 실제로 와있음을 담담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되기까지는 프란치스코처럼
최선에서부터 마지막 하나 쥐고 있던 선까지 포기하는 가난과
작은 악에서부터 가장 싫어하는 악까지 껴안는 과정을 거쳐야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최악을 각오하게 되고 두려움이 없게 되었어도
오늘 엘리야에게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인간은 다시 두려움 앞에 서는 존재이고,
그래서 오늘 엘리야처럼 다시 하느님 앞에 서야 되는 것이 또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내 앞에 있을 때 의지적으로라도 주님께 몸을 돌리고
오늘 엘리야처럼 하느님께서 나타나주시기를 바라고 기다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