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절대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바리사이에게
안식일에 일해도 되었던 예들을 대면서 그 안식일 법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다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비라고 그리고 그것을 안다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 않았을 거라고 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끌어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기준은 자비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비의 사람은 단죄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안식일 법보다 상위의 법이 자비의 법이라는 말씀인데
이것은 지혜로운 율법 학자라면 알 수 있는 거였을 겁니다.
복음 다른 곳에서 율법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 묻는 율법 학자에게
주님께서 그 유명한 대답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는
대답을 하시자 율법 학자도 그 말을 받아 이렇게 덧붙이지요.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이렇게 율법 학자가 슬기롭게 얘기하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율법 학자에게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고 칭찬하십니다.
이것은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똑같은 말이 아닙니까?
우리가 지혜롭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책상머리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자비라고 잘 알고 있지만
살다 보면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장사꾼이 분주하게 물건을 팔다보면 돈 주머니를 잃거나
더 중요한 자기 자식을 잃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 안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어제 제가 똑같은 잘못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저의 어머니 기일에 형제들이 모여 같이 미사하고 식사를 하였는데
저도 아들이고 나이도 제일 젊기에 이번에는 제가 식사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하는 <여기 밥상>에서 미사와 식사를 한 것입니다.
아주 열심히 그리고 잘 준비하고 식사를 하는데 시작부터 제가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것을 의식하고 조심했는데도
어느 시점에 가자 그 조심하던 것을 하고 말았습니다.
거슬리는 몇 가지 누적된 일들이 제 안에서 사랑을 밀어내고,
누적된 피로가 제 안에서 사랑을 밀어낸 것입니다.
애초에는 사랑으로 시작한 일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살다보면 그것도 정신없이 살다보면 중요한 것을 놓치는데
제일 치명적인 것이 바로 살면서 자비를 놓치고 사람을 놓치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정신없이 바쁘다고 하는데, 분주함이 정신을 놓치게 하고,
정신을 놓치는 데서부터 자비를 놓치는 일이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그 정신없는 가운데서 죄 없는 사람을 단죄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일이
또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것인데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그런 뜻에서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마음 중심에 새기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