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마르타와 마리아는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시중을 드는 일에
집중하는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자기와 다른 모습을 보게 된 마르타는
마리아가 자신과 같아지기를 원합니다.
마리아의 모습이 편하게 보이고,
자신의 일이 힘겹게 느껴집니다.
겉으로 드러난 마르타의 마음은
마리아가 자신의 일을 돕는 것이지만,
마르타의 속 마음은
마르타도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마저 그렇게 한다면
예수님께 시중을 들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마르타는 앉아 있지 못합니다.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몫은 무엇일까요?
좋은 몫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시중 드는 일과 말씀을 듣는 일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각자의 일에 충실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가 먼저 말씀을 듣는 것을 선택해서,
또는 마르타가 음식을 더 잘해서 등등
마르타가 시중드는 일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마르타는 자신이 선택한 것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염려와 걱정으로 나타납니다.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있습니다.
삶은 다양하다보니
선택이 필요합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선택할 수 없고,
당연히 선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련이 남습니다.
평소에는 그 미련이 커 보이지 않지만,
지금의 순간이 힘들고 어려울 때
그 미련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계속
눈은 선택하지 못한 것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 안에는 미련도 있지만,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선택의 길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지금의 어려움에
좀 더 머무르려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물론 우리의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기에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함께
어려움 속에 머무를 수 있을 때
나와 다른 모습에 질투하거나
그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온전히 기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