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징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나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이
그들을 단죄할 것이라는 말로,
그들이 표징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같은 표징을 접하고 하느님께 돌아선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을
꾸짖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도 회개를 이야기했고,
예수님도 회개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보다 더 큰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사람들은
심판관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회개를 통해 의로운 사람이 되어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의 불의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돌아선 사람들도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의롭게 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요나의 회개 설교가
회개를 받아들이는 것과 거부하는 것을 통한
옳고 그름으로의 분리를 지향한다면,
예수님의 회개 선포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회개를 받아들이는 것을
지향합니다.
심판을 통해
회개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십니다.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표징을 보아도
하느님께 돌아오리라고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돌아섬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 저것 핑계를 대면서
회개를 미루고 싶은 마음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를 말씀하시지만,
그렇다고 회개를 강요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느님께 돌아서기를 원하시지만,
지금 당장 하지 않는다고
벌을 주지는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기쁘게 응답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 돌아서지 못하는 나 자신을
질책하기에 앞서,
하느님의 기다리심,
하느님께 다가가지 못하는 우리를
하느님께서 안타까워하심을
먼저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