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
다마스쿠스의 강들은 이스라엘의 어떤 물보다 더 좋지 않으냐?
그렇다면 거기에서 씻어도 깨끗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
인도를 방문하였을 때 저는 여러 가지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보편적인 생각이나 정서를 뛰어넘는 것들 때문이었지요.
그중 하나가 강가 강(갠지스 강)에 갔을 때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 강을 성스런 강이라고 생각하기에
죽기 전에 꼭 한 번 이 강을 성지 순례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저도 마침 그곳 바라나시 대학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힌두 사원과 강가 강을 가봤습니다.
역시 수많은 순례자들로 붐볐는데
여기저기서 시신을 화장하고 있는 가운데
순례자들은 강가 강에 들어가 몸을 씻고 심지어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얼마나 더러운지 모릅니다.
돈이 많으면 장작을 많이 사서 시신을 완전히 태워 강에 뿌리지만
돈 없는 사람은 조금 태우다 시신을 버리고
아주 가난한 사람은 그냥 시신을 강에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배를 빌려 강 한 가운데로 저어가서 보니
사람 시신이 강을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그 물에 몸을 씻고 그 물을 성수라며 먹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저 물로 씻고 피부병이 생기지 않을까,
저 물을 마시고 각가지 병이 생기기나 않을까 걱정을 하는데
그들은 깨끗함과 더러움의 인간적인 구별을
성스런 강이라는 믿음 하나로 간단히 넘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깨달은 것이 믿음과 초월의 관계입니다.
하느님을 믿을 때 우린 인간적 어리석은 생각들을 초월케 됩니다.
우리는 나아만처럼 인간의 손이 치유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을 잘 고친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 고치면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거기다가 손까지 정성껏 얹어주면 더 잘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러운 물로 씻으면 병이 나고
깨끗한 물로 씻으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고 과학적으로는 더더욱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는 꼭 그런 것이 아니고
영성적으로 보면 더더욱 그렇지 않습니다.
고쳐주시고 씻어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사람의 정성과 손의 재주가 중요하지 않고
물의 깨끗함과 더러움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고치신다는 것을 믿고,
물이 아니라 성령께서 씻어주신다는 것을 믿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무엇으로 고치고 씻어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인간의 생각과 걱정과 의지 따위를 가볍게 초월할 수 있고
우리에게는 고쳐짐과 씻어짐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나아만은 생각에서 믿음으로 바뀐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믿음으로 생각을 벗어나고 하느님께로 올라가고 넘어갔습니다.
엘리사가 한 것은 다만 그 생각을 깬 것입니다.
이 사순절,
우리도 생각에서 믿음으로 넘어가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수많은 생각들, 고정관념들을 깨야겠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또 다른 한 측면일 듯싶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
다마스쿠스의 강들은 이스라엘의 어떤 물보다 더 좋지 않으냐?
그렇다면 거기에서 씻어도 깨끗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
인도를 방문하였을 때 저는 여러 가지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보편적인 생각이나 정서를 뛰어넘는 것들 때문이었지요.
그중 하나가 강가 강(갠지스 강)에 갔을 때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 강을 성스런 강이라고 생각하기에
죽기 전에 꼭 한 번 이 강을 성지 순례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저도 마침 그곳 바라나시 대학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힌두 사원과 강가 강을 가봤습니다.
역시 수많은 순례자들로 붐볐는데
여기저기서 시신을 화장하고 있는 가운데
순례자들은 강가 강에 들어가 몸을 씻고 심지어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얼마나 더러운지 모릅니다.
돈이 많으면 장작을 많이 사서 시신을 완전히 태워 강에 뿌리지만
돈 없는 사람은 조금 태우다 시신을 버리고
아주 가난한 사람은 그냥 시신을 강에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배를 빌려 강 한 가운데로 저어가서 보니
사람 시신이 강을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그 물에 몸을 씻고 그 물을 성수라며 먹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저 물로 씻고 피부병이 생기지 않을까,
저 물을 마시고 각가지 병이 생기기나 않을까 걱정을 하는데
그들은 깨끗함과 더러움의 인간적인 구별을
성스런 강이라는 믿음 하나로 간단히 넘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깨달은 것이 믿음과 초월의 관계입니다.
하느님을 믿을 때 우린 인간적 어리석은 생각들을 초월케 됩니다.
우리는 나아만처럼 인간의 손이 치유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을 잘 고친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 고치면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거기다가 손까지 정성껏 얹어주면 더 잘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러운 물로 씻으면 병이 나고
깨끗한 물로 씻으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고 과학적으로는 더더욱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는 꼭 그런 것이 아니고
영성적으로 보면 더더욱 그렇지 않습니다.
고쳐주시고 씻어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사람의 정성과 손의 재주가 중요하지 않고
물의 깨끗함과 더러움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고치신다는 것을 믿고,
물이 아니라 성령께서 씻어주신다는 것을 믿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무엇으로 고치고 씻어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인간의 생각과 걱정과 의지 따위를 가볍게 초월할 수 있고
우리에게는 고쳐짐과 씻어짐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나아만은 생각에서 믿음으로 바뀐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믿음으로 생각을 벗어나고 하느님께로 올라가고 넘어갔습니다.
엘리사가 한 것은 다만 그 생각을 깬 것입니다.
이 사순절,
우리도 생각에서 믿음으로 넘어가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수많은 생각들, 고정관념들을 깨야겠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또 다른 한 측면일 듯싶습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기 만 하면
저절로 믿음이 생긴 다는 것도 간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