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악행이 남에게 하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는데
오늘 예레미야서는 자기에게 하는 악행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짓이 자해행위, 자살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어떤 짓이?
하나는 생수의 원천인 하느님을 저버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위해 물이 고이지 않는 저수 동굴을 판 것입니다.
그런데 따져 보면 저수 동굴을 판 것이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기껏 저수 동굴을 파놓고는 생수의 원천을 저버린 것이 근본 문제이고
저수 동굴이라고 팠는데 그 동굴에 물이 고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저수 동굴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물을 받을 수 있고 저장할 수 있으며 그것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저수 동굴이 없는 것은 쪽박도 없이 음식을 달라는 것이고,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쪽박이 있어야 얻어먹을 수도 있는데 그 쪽박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근본적인 악은 생수의 원천인 하느님을 저버린 것이라고 예레미야는 얘기합니다.
물줄기가 끊기면 저수 동굴이 무슨 소용입니까?
이는 마치 물을 못 댄 논과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물 댄 논을 보면 마음이 충만합니다.
어렸을 때 저희 논에 물대기 위해 새벽같이 물 대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수리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던 때 자기 논에 물 대는 것은 전쟁이었고
그래서 아전인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기 논에 물 대는 건 중요한 문제였지요.
저희 집은 남자 어른이 없어서 항상 물 대는 순서에서 밀렸고,
제가 초저녁잠이 많아 한두 시에 일어나 논에 물을 대곤 했는데
그때 저희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면 행복이 들어오는 것 같았지요.
이렇듯이 물을 대는 것이 중요한데 물줄기를 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살 행위 또는 자해 행위지요.
그런데 저수 동굴을 만든 사람이 기껏 만들어 놓고 왜 물줄기를 끊겠습니까?
그럴 리 없고 물을 댄다고 댔는데 그것이 생수의 원천인 하느님이 아니라
원천이 아닌 그래서 곧 말라버릴 다른 물줄기서 물을 대려고 했던 거겠지요.
그래서 요한복음의 주님은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 와서 마셔라.”
다른 곳이 아닌 당신에게 와서 마시라고 하시고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의 주님도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없이 술과 젖을 사라.”고 당신께로 초대하시며
그러나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 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며 다른 데서 물을 찾는 사람을 나무라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생수의 원천인 하느님을 저버린 이스라엘의 악행을 말씀하신
주님께서 다른 악행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물이 새는 악행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물을 대지 않는 것도 악행이지만
기껏 댄 물을 간수하지 못하는 것도 악행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다시 물 댄 논 얘기를 하면 기껏 논에 물을 댔는데
웅어가 논두렁에 구멍을 내 물이 다 빠지게 내버려두는 것과 같습니다.
은총의 낭비랄까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내버려두는 악행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고마워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지 않고,
자신을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진정 사랑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
그런 악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