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반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말씀에서는
비유를 드시면서
불가능에 가깝다고 표현하십니다.
말을 반복하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목적을 지닙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반복은
네가 틀렸다고 꾸짖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따르지 않는 부유한 젊은이가 안타까워서
말씀을 반복하게 되십니다.
이 젊은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기특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들도
잘 지킨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 와서,
가난을 선택하라는 말씀에
그는 좌절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고 맙니다.
지금까지 잘 해 온 것처럼
마지막 남은 하나도 잘 하면
좋은 마무리가 될텐데,
예수님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우셨을 것 같습니다.
가난은 그 자체를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기 위해서
가진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말처럼
가난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조건입니다.
부유할 때에는
예수님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행길에서 짐이 가벼울수록
발걸음이 편안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도
몸이 가벼울수록
그 길이 수월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큰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는 누구에게나
주시려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우리를
안타까워하십니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기는
매우 아쉽습니다.
아니 놓으면 죽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것을 알지 못하기에
놓는 것은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지금 당장은 알지 못할지라도
분명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
그것은 언제나 내가 손 내밀어 잡으면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더 좋은 것을 맛보기 시작하면
쥐고 있던 우리의 손도
점점 풀리게 될 것입니다.